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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세돌 은퇴 부른 한국기원 정관, 공정위 "문제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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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세돌 9단이 2019년 12월 열린 은퇴 대국 제2국을 마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세돌 9단이 2019년 12월 열린 은퇴 대국 제2국을 마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세돌 9단이 은퇴 전 불공정하다고 지적한 프로바둑 정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프로기사회 회원이 아닌 기사가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막은 한국기원의 정관은 스포츠계의 오랜 관행이라는 이유에서다.

14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 서울사무소는 지난달 28일 한국기원과 기사회가 소속 기사의 탈퇴를 제한한 행위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공정위 신고의 계기가 된 정관에는 한국기원이 관여하는 모든 대회에 기사회 소속 기사만 참가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사회는 한국기원에 입단한 기사라면 자동으로 가입하게 돼 있다.

이세돌 "동의 없이 상금 3~15% 떼가는 것 부당" 

한국기원은 2019년 7월 기사회의 요구로 해당 정관 조항을 신설했다. 앞서 2016년 이세돌과 그의 형인 이상훈 9단이 기사회가 대회 상금의 3~15%를 공제해 적립금으로 모으는 것에 반발해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세돌 형제는 친목단체 격인 기사회가 기사 본인의 동의 없이 대국 수입을 떼가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이런 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공정거래법은 기사회와 같은 사업자단체가 구성원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프로스포츠에서 경기 조직자가 참가자의 선정이나 수익 배분 등에 개입·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원을 각종 대회와 경기를 주관하고 프로기사를 관리하는 '경기 조직자'로 판단한 것이다.

특히 기사회 탈퇴를 막은 정관에 대해 공정위는 “선수 선발과 관련한 제한은 다소 반경쟁적이라도 허용되고 있다”며 “한국기원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이어졌다”고 했다. 한국기원은 1954년 출범해 올해로 67주년을 맞는 재단법인이다.

공정위 "다른 스포츠에서도 있는 관행" 

공정위는 기사회가 대회 상금을 공제하는 행위 역시 다른 프로스포츠에서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관행이라고 봤다. 특히 이세돌이 제기한 상금 공제 문제에 대해 “기사회가 개별 기사의 자유 탈퇴를 인정할 경우, 상금을 많이 획득하는 기사의 탈퇴가 우려된다”며 “프로바둑 시장이 위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바둑계 한 관계자는 “대회 우승 상금을 기사회가 일부 가져가는 것에 이세돌이 반대하자, 다른 정상급 기사들의 ‘도미노 이탈’과 기사회 기반 약화 등을 우려해 강력하게 대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기사회와 민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프로스포츠에서는 드래프트 제도 등 반경쟁적인 요소가 있더라도 스포츠의 존립을 위해 인정하는 질서가 있다”며 “한국기원의 정관이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바둑 기사라는 특수한 노동시장에서 이뤄졌던 자율적인 제한 행위를 경쟁법의 잣대로 판단하고 시정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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