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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사장의 '샌드위치 수모'…집나간 스파이더맨 데려오다 [폴인인사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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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싫으나 좋으나 우리는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죠. 창업자는 카리스마 넘치고 혁신적이며 도전적인 리더로 모든 관심과 조명을 한 몸에 받습니다. 때론 그들의 괴팍한 성격마저도 비범함의 예시로 칭송 받을 정도죠. 다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그런 칭송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창업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 같은 창업자형 리더만 있는 건 아닙니다. 창업자의 든든한 보좌관이자 조직의 살림꾼, 탁월한 관리자, 또는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리더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을 겁니다. 2등이었지만 1등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 이름하여 ‘1인자 된 2인자들’을 소개합니다.

※ 이 콘텐츠는 지식플랫폼 폴인의 스토리북 〈1인자 반열에 오른 2인자들〉의 4화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인터뷰 내용은 폴인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스타크가 닉 퓨리를 만나고 생긴 일

내 앞에서 꺼져!

마블 스튜디오 사장인 케빈 파이기의 얼굴 쪽으로 먹던 샌드위치가 날아왔습니다. 파이기가 뭘 잘못한 건 아니었어요. 그는 다만 "다음 스파이더맨 영화를 마블이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타진했을 뿐이었습니다. 욕설과 함께 샌드위치를 던진 인물은 소니 픽쳐스 사장 에이미 파스칼이었습니다.

때는 2014년 여름이었고, 장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니 픽처스 사장실 옆의 테라스였어요. 몇 달 전 소니가 만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가 개봉했지만 '그다지 어메이징 하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파이기는 마블에서 가장 사랑 받는 캐릭터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을 소니가 망치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어요. 자기가 만들면 훨씬 빛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조심스럽게 스파이더맨 얘기를 꺼냈던 겁니다.

그런데 대체 스파이더맨이라는 걸출한 캐릭터를 왜 원작자인 마블이 아닌 소니가 가지고 있는 걸까요. 얘기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니는 스파이더맨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마블에 스파이더맨을 사고 싶다는 제안을 해요. 이 때 마블은 2500만 달러를 내면 스파이더맨 뿐 아니라 '떨이'로 마블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 대부분을 영화로 만들어도 된다는 역제안을 합니다. 여기에는 아이언맨, 토르, 앤트맨, 블랙 팬서 등등이 포함돼 있었죠. (캐릭터를 5000개나 가지고 있던 마블은, 당시 현금이 부족해 캐릭터 영화 판권을 팔아서 돈을 벌고 있었어요. 당시 다른 영화사에 팔아 넘긴 캐릭터가 엑스맨, 판타스틱4 등 엄청 많습니다.)

마블의 역제안에 소니는 코웃음을 쳤어요.

그런 B급 캐릭터에 누가 관심을 갖는다고. 스파이더맨이나 줘.

소니는 1000만 달러를 내고 스파이더맨 판권만 샀습니다. 소니가 2002년과 2004년에 내놓은 2개의 스파이더맨 영화는 극장 수입만 모두 16억 달러를 벌어들였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소니의 승리. 하지만 세상 일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마블은 영화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 만화 및 캐릭터 기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93년 장난감 회사 토이비즈와 합병을 하면서 마블 필름을 설립하게 되죠. 마블 필름은 1996년 지금의 마블 스튜디오가 됩니다. 이 때까지도 마블은 영화사라기 보다는 캐릭터 장난감과 라이센싱으로 돈을 버는 기업이었어요.

하지만 2000년 케빈 파이기라는 프로듀서가 입사한 뒤 마블은 달라집니다. 마블을 진정한 영화제작사로 탈바꿈한 사람이 파이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가 마블 입사 후 한 수많은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2008년 개봉한 마블 스튜디오의 첫 영화 '아이언맨1'에 장면 하나를 집어넣은 겁니다.

어떤 장면이냐고요? '아이언맨1'의 마지막 장면(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내가 아이언맨이다"라고 말해서 기자회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장면 말고), 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스타크가 쉴드의 디렉터 닉 퓨리(사뮤엘 L. 잭슨)를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입니다. 닉 퓨리는 이 때 스타크에게 처음으로 슈퍼 히어로들의 모임인 '어벤저스'에 대한 얘기를 하죠.

이 장면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요? 이 한 장면으로 파이기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마블 캐릭터들이 모여 사는 가상의 세계이자 미디어 프랜차이즈에요.

이전 영화에서 슈퍼 히어로들은 각자 혼자만의 세계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 마블의 수많은 캐릭터들을 한 세계에 모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어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호크 아이, 헐크, 토르,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저스까지 마블이 만드는 모든 영화의 스토리가 연결돼 있는 건 MCU라는 개념 덕분인 겁니다. 팬들이 마블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영화 속에 의미 있는 완결된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파이기는 이런 가상의 세계를 만든 뒤 마블의 캐릭터들을 하나씩 영화화해 나갔어요. 집 나갔던 스파이더맨도 샌드위치를 맞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결국엔 다시 불러들였죠. 게다가 2009년 12월 마블이 디즈니에 인수된 이후 디즈니는 인수 합병을 통해 마블이 예전에 팔아 넘겼던 캐릭터들을 모두 다시 사왔습니다. 이젠 진정한 MCU가 열린 셈 입니다. 가능성은 정말이지 무궁무진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마블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상업영화 제작사로 만든 파이기에 대해 알아보죠.

5수를 해서라도 영화 학교에 가고 싶었던 이유

파이기는 1973년 보스톤에서 태어나 뉴저지 주 웨스트필드라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매주 금요일은 영화관에 갔어요. 영화를 보면서 메모를 했습니다. 영화관의 사운드 시스템이 어떤 지까지 말이죠. 그 때 본 영화 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스타워즈', '인디애나 존스', '백투더퓨처', '고스트버스터즈', '슈퍼맨'과 같은 시리즈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위험'은 극장에서 13번을 봤다고 해요.

하지만 무작정 영화를 보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파이기는 슈퍼맨 시리즈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슈퍼맨은 1과 2는 꽤 괜찮은 영화였지만 3은 그저 그랬고 4는 못 봐줄 정도였어요. 1987년에 나온 슈퍼맨4를 본 뒤 파이기는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슈퍼맨5를 어떻게 만들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망해버린 슈퍼맨 프랜차이즈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말이죠. 그가 14살 때의 일입니다. 물론 슈퍼맨만 그랬던 건 아니었겠지요. 그의 이 같은 머리 속 고민과 상상은 나중에 속편에 속편으로 이어지는 마블 영화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일 겁니다.

2019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케빈 파이기

2019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케빈 파이기

이런 파이기는 대학에서 (당연히!) 영화를 전공하고 싶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 자신의 우상 조지 루카스와 론 하워드, 로버트 저메키스가 나온 USC 필름 스쿨에 가고 싶었죠. 사실 거기 말고는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떨어졌다는 데 있어요. 하지만 파이기는 굴하지 않고 매 학기 지원을 계속 합니다. 미국에서는 대입 재수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지원했어요. 가족들은 다른 전공을 알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파이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필름스쿨에만 지원해요. 그리고 5수 끝에 결국 입학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다른 데를 알아 봐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이었어요.

그렇게 그는 영화 학교에 입학을 했고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영화사에서 인턴을 시작합니다. '구니스', '리썰웨폰', '슈퍼맨' 등을 감독한 리처드 도너 감독의 부인이자 프로듀서인 로렌 슐러 도너 밑에서 일을 했어요. 슐러 도너 또한 '세인트 엘모스 파이어', '프리티 인 핑크', '프리윌리' 등을 제작한 유명 제작자 였죠.

인턴으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제작보조(production assistant, PA)로 정식 채용됩니다. 이 때 그가 주로 맡은 일은 개 산책 시키고 점심을 챙기며 세차를 하는 거 였어요. 하지만 그는 행복했습니다. 영화판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유명 프로듀서 밑에서 일까지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궂은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슐러 도너의 비서로 일을 했고 1990년대 후반 결국 그가 꿈에 그리던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됩니다.

헐리우드 영화의 법칙, 마블에서 새롭게 시작되다

그가 협력 프로듀서(associate producer)로 처음 참가한 영화는 2000년에 개봉한 '엑스맨' 영화였습니다. 걸어 다니는 '슈퍼히어로 백과사전'으로 불리던 그는 이 영화에서 진가를 발휘했죠. 이 때 그를 눈 여겨 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마블 스튜디오를 창업한 아비 아라드였습니다.

아라드는 파이기를 마블로 불렀습니다. 파이기는 마블에 와서도 처음에는 주로 아라드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일을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마블 스튜디오는 단독으로 직접 영화제작을 해본 적이 없는 작은 제작사였거든요. 하지만 슈퍼히어로를 좋아하는 파이기는 마블이 좋았습니다.

당시 마블의 CEO 이삭 ‘아이크’ 펄무터는 리스크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원래 장난감 회사를 운영하다가 도산 위기에 빠진 마블을 인수한 그 입니다. 그는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들에게 포스트잇 뒷면에도 메모를 하라고 종용하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스테이플러 심을 재활용하는 짠돌이였습니다. 리스크(risk)가 큰 영화 제작을 할만한 배짱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2005년 투자은행 메릴린치로부터 5억2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고서야 영화 제작을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입니다. 펄무터는 영화보다는 캐릭터 장난감으로 돈을 벌 생각에,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실시했어요. "어느 캐릭터 장난감이 제일 좋으니?"라고 물었죠. 답은 아이언맨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블의 첫 영화 '아이언맨'(2008년)이 탄생합니다. 콜린 파렐과 패트릭 뎀프시가 토니 스타크역 물망에 올랐지만, 역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돌아갔습니다. 다우니 주니어가 비용면에서 쌌기 때문이었어요. 감독 역시 제작비 가지고 왈가왈부 하지 않을, 당시는 유명한 감독이 아니었던 존 파브르가 맡았죠.

파이기는 아이언맨 개봉 직전에 마블 스튜디오 사장으로 승진합니다. 마블의 영화 제작을 총괄하게 된 거죠. 그는 물 만난 고기마냥 자신의 덕후스러움을 마음껏 발휘했습니다. 아이언맨 이후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 영화에 이어 '어벤저스'(2012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마블은 승승장구 합니다. 파이기는 MCU 속에서 속편인지 스핀오프인지 명확하지 않은, 서로 연결된 슈퍼 히어로 영화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헐리우드 영화의 문법을 새로 써나갔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공통된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계 안에 캐릭터들을 넣어 이야기가 연결되도록 한 뒤, 영화와 TV, 책,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 활용하는 것을 '트렌스미디어(Tansmedia) 전략'이라고 합니다. MIT의 헨리 젠킨스 교수가 저서 '컨버전스 컬쳐'에서 언급한 전략이에요. 이 전략을 이용하면 콘텐츠 확대 재생산을 하기가 쉽습니다.

이 와중에 마블은 2009년 12월 40억 달러에 디즈니로 인수됩니다. 인수 당시 디즈니는 파이기를 마블을 이끌어갈 핵심 인물로 봤다고 해요.

집 나간 스파이더맨을 데려오다

다시 스파이더맨 얘기로 돌아가 보죠. 파스칼 소니 사장은 파이기의 '스파이더맨을 마블이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안이 자신과 소니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격하게 반응했던 겁니다. 하지만 소니는 결국에는 마블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프랜차이즈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파이기뿐이었으니까요.

결국 극장 수입은 소니가 갖고 장난감 수입은 마블이 갖는다는 계약 조건으로 마블과 소니가 공동 제작한 스파이더맨 영화가 2017년에 개봉했습니다. 아이언맨의 찬조 출연에 힘입어 이 영화는 2004년 이후 소니가 만든 영화 중 최고의 흥행 수입을 올렸죠.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스파이더맨: 홈커밍'. 20년 만에 집(마블)으로 돌아온 스파이더맨을 환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블의 센스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2008년 '아이언맨1' 이후 2019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까지 파이기가 마블에서 내놓은 23개의 영화가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극장 수입만 220억 달러가 넘습니다. 10년이 조금 넘는 이 기간 동안 파이기는, 마블을 영화 한 번 안 만들어 본 제작사에서 세계 최고의 상업 영화 제작사로 만들어낸 셈입니다.

모네의 진품보다 어벤저스 포스터를 선택하는 사람

(후략)

※이 콘텐츠는 폴인의 스토리북 〈1인자 반열에 오른 2인자들〉의 4화입니다. 케빈 파이기가 다른 제작사와의 차별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면 스토리북에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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