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과학기술·의학 빛낸 한국인

중앙일보

입력

2003년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과학.의학기술이 우리나라 토양에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한 해였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고 성능의 캡슐형 내시경, 세계 최초의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 등이 개발됐으며, 신약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국산 퀴놀론계 항균제가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개가도 올렸다.[편집자]

*** 이종욱 WHO 사무총장

국제기구 수장 오른 첫 한국인

지난 1월 한국인 최초의 국제기구 수장이란 영예를 안은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그는 모잠비크의 총리와 멕시코 보건장관 등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5년 동안 세계 보건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전임 총장 브룬트발트 역시 노르웨이 총리였다. 국가 간 힘겨루기와 정치적 타협을 통해 선출돼 왔던 관행에 비춰볼때 실무형 총장이 선출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종욱 사무총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안정된 의사직을 포기하고 피지와 필리핀 등 오지에서 나병 등 전염병 퇴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또 19년간 세계보건기구에 재직하면서 탁월한 업무능력을 발휘하며 백신국장 등 요직을 지내기도 했다.

*** 권준욱 前보건원 방역과장

한반도에 사스 상륙 막은 일등공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가 한반도를 피해가는 데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쏟아져 들어오는 수백만명의 승객을 대상으로 공항 검역은 물론 의심되는 고열환자의 추적조사와 격리 등 사스 방역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지금까지 고열과 폐렴 등 증상을 통해 국내에서 발표된 사스 의심 환자와 추정 환자 가운데 실제 혈청검사를 통해 사스 원인 바이러스로 지목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는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36명의 역학조사관과 1백75명의 국립보건원 인력이란 열악한 조건에서 이뤄낸 작은 기적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그는 최근 방역과장에서 보건복지부 국제협력관으로 자리를 옮겨 스위스 제네바에 파견 근무 중이다.

*** 황우석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소 광우병서 해방…무균돼지 복제도

서울대 수의과대 황우석(51)교수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들어 연구 성과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광우병에 걸리는 않는 소'와 '장기 생산용 무균돼지 복제'가 그것이다. 동물 복제의 대가로서 면모를 다시 한번 과시했다.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는 유전자 조작과 동물복제기술을 동시에 사용해 탄생시켰다. 모두 네 마리가 차례로 태어났으며, 현재 건강한 상태다. 이들을 교배하면 그 새끼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황교수의 설명이다.

이 소가 상용화되면 더 이상 광우병 걱정 없이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장기 생산용 무균돼지는 미국 시카고의대에서 30여년 동안 사육해온 무균돼지의 세포를 들여와 복제했다. 그러나 이 돼지는 태어난 뒤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 돼지가 사육되면 인간의 장기를 돼지에서 얻게 될 전망이다.

*** 이영욱 연세대 교수

'NASA 천체망원경' 산파 역할

이영욱(42)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5월 쏘아올린 자외선 천체우주망원경 '갤렉스'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다. 이 천체망원경은 지상 7백㎞ 상공을 돌며 우주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자외선을 분석해 은하의 생성과 소멸, 나이 등을 밝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자외선은 늙은 별과 막 탄생한 별이 많이 발산한다는 데 착안, 개발된 것이 갤렉스다. 갤렉스 개발 비용의 3% 정도만 대고도 NASA의 공동연구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이교수의 연구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현재 과기부 창의연구사업인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장을 맡고 있다.

*** 박종오 마이크로사업단장

캡슐형 내시경 등 첨단기술 선봬

박종오(47) 과기부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장은 차세대 성장산업을 일굴 수 있는 굵직한 연구성과를 잇따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박단장은 과제 발굴과 시스템통합 등을 주도하며 연구진을 이끌었다. 주요 연구성과는 내시경의 개념을 바꾼 캡슐형 내시경 '미로', 마이크로PDA, 질병 진단용 단백질칩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이 집약돼 있다.

캡슐형 내시경은 비타민 알약보다 약간 큰 형태로 입으로 삼키면,식도.위.소장.대장 중 원하는 부위의 실시간 영상을 의료진이 무선으로 볼 수 있도록 한 획기적인 진단장치. 국내외에서 기술이전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도 하다.

마이크로 PDA는 손목시계형 컴퓨터로 볼 수 있다

*** 임종태 인공위성센터장

'과학위성 1호' 발사 우주관측 개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임종태(54)소장은 지난 9월29일 '과학위성 1호'와 교신에 성공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성을 쏘아올린 뒤 11차례의 교신 시도 끝에 이뤄진 극적인 성공이었다. 러시아 현지에서도 발사 일정이 하루 연기되는 등 불안의 연속이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과학위성 1호는 한국 최초의 우주관측 위성이다. 임소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이 5년여 동안 공을 들여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주탑재체인 '원자외선 분광기'가 보내올 영상자료에 세계 천문학자들이 벌써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외선과 X선 사이에 위치하는 원자외선 영역에서의 우주관측은 시도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원자외선은 은하의 진화에 관여하는 성간물질에서 주로 나오는 파장대로, 우주의 나이 등 우주생성의 비밀을 풀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 추연성 LG생명과학 상무

항균제 '팩티브'로 年800억 대박

지난 4월 첫 주말 서울 여의도의 LG생명과학 본사에는 오랫동안 갈망하던 한장의 편지가 도착했다. 1991년부터 연구에 착수했던 신약 퀴놀론계 항균제 '팩티브'에 대한 '미국 FDA 신약승인서'였다. 12년의 산고 끝에 받아낸 국내 최초의 뜻깊은 결실이었다.

팩티브의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신약승인의 마침표까지를 찍은 추연성(47) 제품개발담당 상무. 그는 당시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절대 아니다. 그동안 프로젝트 중단의 위기 속에 고락을 함께 했던 1백여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특히 초기물질을 찾아내고 고인이 된 홍창용 박사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팩티브로 세계시장 공략에 나선 LG생명과학은 로열티와 전세계 원료 공급 등으로 연간 8백억원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

발기 치료제 '비아그라' 원리 밝혀

바이오벤처 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조중명(55) 대표이사는 지난 9월 세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의 자그마한 벤처기업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지의 표지를 장식한 것이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작용원리를 세계 최초로 분자수준에서 규명한 성과로, 부작용을 없앤 차세대 발기부전 치료제의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난 3년간 조대표의 지휘 아래 10여명의 연구원들이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한 결과 거둬들인 값진 성과였다.

조대표는 2000년 LG화학 생명과학연구소장을 지내다 세계 10대 제약회사를 꿈꾸며 고난의 벤처행을 선택했다. 조대표는 "네이처지 게재를 계기로 외국의 제약사들도 우리의 연구개발 수준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