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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前정부 탓하는 여권…"北원전 건설 시초는 박근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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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리를 함께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중앙포토]

201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리를 함께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중앙포토]

‘정책 논란→야당의 문재인 정부 비판→여당의 이명박·박근혜 정부 소환’ 공식이 또 다시 재현되고 있다.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삭제된 산업통상자원부의 530개 파일 가운데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공소장에 첨부된 범죄일람표를 통해 공개되자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나서 “이적행위(利敵行爲)”라고 비판하며 여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여권은 북한 원전 건설 문제가 이미 과거 정권에서부터 검토되던 정책이란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 행사 의전을 담당하고 9·19 평양 공동선언 당시 제1부속비서관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근접 수행한 조한기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지난 30일 페이스북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준다는 논의는 어디에서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런 뒤 “다만 당시 한국경제, 중앙일보, 신동아 같은 보수 언론이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자는 적극적인 주장을 해서 놀란 기억은 있다”며 “비슷한 주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 때에도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외쳤을 때도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주장들이 나온 바 있다”고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과 평양을 오가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원전 논의는 없었고,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때 북한에 원전을 짓자는 주장이 나온 적은 있다는 주장이다.

전 의전비서관, “이명박·박근혜 때 북한 원전 건설 주장 나와”

비슷한 주장은 한 시간 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페이스북에도 등장했다. 윤 의원은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530개 문서 목록 중에 220여개는 박근혜 정부 당시 원전국 문서임이 밝혀졌다”며 “북한 원전 검토 자료는 산업부에서는 향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 대비해서 박근혜 정부부터 단순하게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자료라고 한다”고 적었다. 그러고는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론까지 주장하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산자부 공무원들이 감사를 앞두고 문건을 삭제한 이유는 무엇이고, 2018년 5월에 작성된 북한 원전 관련 문건들이 남북 정상회담과 어떤 연관성을 갖느냐인데도 ‘과거 정부에서도 했던 일’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전 정부 탓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논란이 될 때마다 여권이 반복해 온 대처법이다.

최근 일본으로 부임한 강창일 주일대사는 지난 2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희가 오물을 치운다는 기분”이라며 “강제동원 문제든 위안부 문제든 전부 그 전 정권 때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인기 만회하려고 독도를 전격적으로 방문하고 천황에 대해서 아주 비아냥거리기도 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합의 없이는 절대 일본 만날 수 없다’, 이렇게 했던 분이 하루 아침에 두 정상 간에 전화로 합의한 다음에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해 버렸다”고 했다.

주일대사, “(전 정권의) 오물 치우는 기분”

전 정부 탓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히는 부동산 대란 때 절정을 이뤘다. 민주당뿐 아니라 정부와 청와대 등 당·정·청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해 10월 KBS 뉴스에 출연해 “사실 참여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집값 안정시킨다고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그 혜택을 사실 이명박 정부 때 봤다”며 “박근혜 정부 때 부양책으로 ‘전세 얻을 돈이면 대출받아서 집 사라’고 해서 집 사는 걸로 거의 내몰다시피 해서 집값이 올라가는 결과는 이 정부가 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오종택 기자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오종택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변창흠 전·현직 국토교통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규제완화의 시차’ 등을 언급하며 현재 집값 폭등 문제가 과거 정부로부터 시작됐다는 논리를 펴 왔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민주당 의원 시절이던 2018년 9월 국회 대정부 질문 때 “이명박 정부 때 17차례, 박근혜 정부 때 13차례 부동산 규제완화 대책은 대부분 투기 조장 대책이었다”며 “(그 대책 때문에) 3년이 지난 지금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야권, “비겁하다” “찌질하다”

여권의 이러한 대응 논리에 대해 야권은 “비겁하다”거나 “찌질하다”고 응수하고 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주자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31일 북한 원전 건설 문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여당 의원들은 비겁하게 또 박근혜 정부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같은 당 경선 후보인 나경원 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여당의 물타기, 전임 정부 탓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온다”고 적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8일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현 정부 임기가 거의 끝날 때가 다 됐는데 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찌질한 것”이라고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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