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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어 흉기난동에 손가락질…편견 걱정하는 중국동포

중앙일보

입력

"코로나 전파에 흉기 난동까지 중국으로 돌아가라."
"중국 동포가 아니라 조선족이다."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발생한 중국 동포 살인 사건 이후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온 글이다. 이튿날 경찰은 50대 남성 A씨를 붙잡았다. 중국 동포인 A씨는 22일 저녁 피해자들과 말다툼 끝에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두 사람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림중앙시장. 여성국 기자

대림중앙시장. 여성국 기자

"범죄 저지르면 한국 못 오니 더 조심" 

중국 동포 간의 끔찍한 사건과 온라인 상의 따가운 시선에 대림동의 중국 동포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역업을 하다가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 대림동의 시장에서 식용 개구리를 팔던 중국 동포 전모(66)씨는 "살인 사건을 저지른 이들이 강한 처벌을 받아야한다"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전씨는 연변과 서울을 오가다 먼저 정착한 아내를 따라 3년 전 부터 대림동에 산다. 전씨는 "이런 일이 다신 없어야 다수의 중국 동포들이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면 한국에 오기 어려워 다들 더 조심하는데…"라고 했다.

지난 25일 기자가 찾은 대림동의 풍경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대림역 근처 중앙시장 입구에서는 중국어로 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중국어 간판, 연변 음식 등 각종 중국 동포 음식점, 식자재 가게, 환전소 등이 이국의 정취를 풍겼다. 물건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들 사이를 지나니 중국어와 한국어가 반반 정도로 들렸다.

중국 동포 전씨가 중앙시장에서 판매하는 식용 개구리. 여성국 기자

중국 동포 전씨가 중앙시장에서 판매하는 식용 개구리. 여성국 기자

영화·코로나·극단적 범죄에 눈치 살피게 돼

대림동의 중국 동포들은 최근의 강력 사건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헤이룽장(黑龍江) 성 출신의 중국 동포인 50대 여성 권모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20년이 됐는데 초기에는 다소 거친 부분이 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일용직 노동을 하는 권씨는 최근 일감이 끊겨 시장에서 중국 케이블TV 공유기를 판매하고 있다. 그는 "문화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고, 일부 동포들간 갈등이나 기싸움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권씨는 "한국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 눈치보고 더 조심해야한다. 서로가 그렇게 응원하고 의지하며 산다"고 전했다.

소수 민족처럼 살아가는 중국 동포들에겐 자신들의 삶터에서 벌어진 범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는다. 중국 동포의 범죄를 다룬 가상의 영화 때문에 편견이 생긴 경험도 적지 않다. 최근엔 코로나19로 더 큰 피해를 봤다. 중앙시장에서 30년 가까이 장사하는 윤모(76)씨는 "작년 이맘 때 중국인과 중국 동포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더 쉽게 전파한다는 오해와 편견이 있어서, 시장 상인들도 중국 동포들도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당시 시장을 찾는 중국 동포들도, 상인들도 방역 수칙을 더 철저히 지키며 조심했다고 한다.

대림중앙시장의 한 상가의 모습. 여성국 기자

대림중앙시장의 한 상가의 모습. 여성국 기자

“외국인 범죄, 내국인의 절반 이하 수준”

윤씨는 "이번 흉기 난동 사건으로 조심스럽게 지내던 중국 동포들도 안타까워할 것"이라고 했다. 윤씨는 "80년대에는 정말로 치안이 불안했다. 문화적인 충돌과 갈등이 있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싸움이 일어나면 일단 말리는데, 그들은 일단 이기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면서도 "하지만 많이 달라지는 중이다. 내 주변 중국 동포들은 일상에서 더 조심하고 성실하다. 한국의 유흥가나 다른 동네들도 비슷한 사건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경찰청과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등 통계를 종합하면 인구 10만명당 범죄발생 건수(2019년 기준)는 내국인 3109건, 외국인 1442건으로 절반 이하 수준이다. 형사정책연구원 최영신 박사는 "국내 거주 외국인의 절반 이상이 중국 동포인데 외국인은 내국인 보다 범죄 건수가 현저히 낮다"고 했다. 다만 "적응에 실패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는 외국인들이 일부 있고 이들의 행동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분석했다.

대림동내 유흥업소 근처에서 주로 범죄가 발생했다. [출처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

대림동내 유흥업소 근처에서 주로 범죄가 발생했다. [출처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

"유흥가의 문제이지 주민의 문제 아니다"

2019년 형사정책연구원은 '국민안전보장을 위한 실효성 제고 방안' 이란 연구보고서에서 대림동 등 외국인 거주 지역 범죄를 분석했다. 대림동의 경우 2018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폭력 802건, 절도 388건 등을 비롯해 범죄는 총 1225건 발생했다. 이중 외국인 범죄는 197건이었다. 살인을 제외한 나머지 범죄에서 내국인 범죄 비율이 더 높았다. 해당 연구에서는 "폭력을 행사할 때 흉기를 사용하는 경향 등 이질적 특성이 외국인에 대한 범죄 관련 편견적 위험 인식을 갖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진단했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라광현 동아대 경찰소방학과 교수는 "유흥가의 문제를 거주 주민들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한국의 다른 지역도 유흥가는 범죄율이 높고 강력범죄도 잦다"면서 "대림동의 경우 주거지와 유흥가 분리가 안 되고 섞여 있는 곳으로 주거지가 범죄밀집지역과 뭉쳐있는 특성이 있다. 가리봉동이나 안산 일부 지역도 마찬가지다. 중국 동포들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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