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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파니 만석도 적자"라는 공연업계…"두 칸 말고 한 칸만"읍소

중앙일보

입력

'공연 중단' 안내문이 붙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한 소극장. 권혜림 기자

'공연 중단' 안내문이 붙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한 소극장. 권혜림 기자

'공연을 일시 중단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이런 안내문을 붙인 소극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62)씨는 "1년 전만 해도 이 인근 소극장 배우들과 안면도 트고 잘 지냈는데, 요샌 통 얼굴 보기 어렵다"며 "공연이 없으니 손님도 3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유지하면서 '두 좌석 띄어 앉기' 방침이 적용된 공연계의 한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실내체육시설과 노래방 등의 영업을 일부 허용했지만, 공연장 관련 완화 조치는 나오지 않아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거리두기 2.5단계 영향이 반영되기 전인 지난해 11월 공연 매출액은 156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12월엔 그 3분의 1 수준인 50억원, 1월엔(21일 기준) 20억으로 집계되면서 좌석 간 거리두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공연 건수도 지난해 11월 1184건에서 12월엔 741건, 1월 230건(21일 기준)으로 급감하는 추세다.

"좌석 다 팔아도 마이너스"

공연계 안팎에서는 "유독 이 업종에만 정부의 기준이 박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중구의 한 공연장 관계자인 이모(30)씨는 "보통 객석의 70% 이상을 채워야 간신히 본전인 구조에서 30%만 객석을 팔라고 하니까 공연할수록 적자"라며 "무대에 올린다고 정상 운영되는 게 아니다. 다들 제 살 깎아가며 버티는 것"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공연업계 관계자도 "좌석이 다 팔린다 해도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라며 "그렇다고 대관료를 면제해주지도 않는다. 전석 오픈은 바라지도 않고 한 칸 띄워 앉기 정도로 규제 완화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평소 뮤지컬·연극 관람이 취미인 김모(31)씨는 "술집도 되고, 교회도 되는데 마스크 쓰고 한 자리에서 입도 뻥긋하지 않는 공연 관람은 왜 안 되느냐"며 "공연 관람으로 인한 확진자가 역학조사 상으로는 한 명도 없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문화를 바라보는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드러난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2주 연장하며 헬스장과 노래방, 학원 등의 영업을 허용한 반면, 공연장에 대한 완화 조치는 나오지 않아 공연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2주 연장하며 헬스장과 노래방, 학원 등의 영업을 허용한 반면, 공연장에 대한 완화 조치는 나오지 않아 공연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뉴스1

관련 업계에도 여파…줄폐업

공연계 침체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물론 관련 산업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한 강모(31)씨는 "업계 전체가 휘청거리면서 대극장 주연급이 아닌 배우들은 대리운전이나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이러다 코로나가 끝나면 공연계에 남는 사람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00년 7월 창간한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도 지난해 12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돌입했다. 더뮤지컬 측은 "2010년부터 미디어 환경이 모바일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 시대로 급변하면서 종이 매체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다"면서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가 재정적 어려움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니아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린 공연 포털사이트 '스테이지톡'은 지난 10월 서비스를 중단했다. 회원 수 6만5000명의 이 사이트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더는 유지가 어려워 부득이하게 운영을 중단한다"며 오픈 6년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동반자 외 거리두기로 완화해야"

한국뮤지컬계가 19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앞에서 '생존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사진 한국뮤지컬협회]

한국뮤지컬계가 19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앞에서 '생존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사진 한국뮤지컬협회]

현재 공연계는 연인, 친구, 가족끼리 함께 오는 관람객이 대다수인 점을 내세워 객석의 절반 이상을 채울 수 있는 현실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한국뮤지컬협회와 뮤지컬 분야 종사자들은 호소문을 내고 '동반자 외 거리두기' 적용을 촉구했다.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집계에 따르면 1인 관람객은 전체 30% 정도로, 동반 관람객 수가 훨씬 많다"며 "현실성 있는 '동반자 외 한 칸 띄기'를 적용하게 되면 65% 이상 점유율을 확보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대 위의 배우 뒤에선 100명이 넘는 공연 종사자가 현장에서 땀을 흘린다"며 "정부의 방역 방침은 객관적 기준과 근거가 없다. 현실성 있고 공연업 특성에 맞는 방침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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