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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돈 내외와 함께 한 열흘 제주도 여행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7)

눈 덮인 한라산 전경. [사진 조남대]

눈 덮인 한라산 전경. [사진 조남대]

옅은 구름 아래로 파란 바다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섬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눈 덮인 한라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주하기 어렵다는 사돈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데리고 여행할 제주도다. 멋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아내와 함께 어린이집에 다니는 외손주 둘을 돌보고 있다. 제주도에 볼일이 있어 대구에 있는 사돈에게 일주일 정도 돌봐달라고 하자 흔쾌히 그러겠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자 딸로부터 “네 분이 함께 애들 데리고 여행 다녀오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평소에도 친구처럼 지내던 막역한 사이라 그러자고 했다.

청초밭에서 염소에게 먹이를 주는 손자.

청초밭에서 염소에게 먹이를 주는 손자.

막상 출발할 날짜가 다가오자 걱정이 앞선다. 엄마 아빠도 없이 3살과 5살인 손주들을 데리고 열흘 동안 지낼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편치 않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나,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울지는 않을까. 그러자 아내는 “평소에 혼자서도 손주 둘을 보살피는데 어른 4명이 돌보는 것은 문제도 안 된다”라며 큰소리친다. 아내의 자신감 있는 한마디에 안심이 된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스스럼없이 일을 추진하는 아내가 있어 든든해진다.

손자는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여서 보채거나 울지는 않을지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륙하자마자 잠이 들어 정말 고마웠다. 제주공항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사돈 내외는 부쩍 자란 손주들을 오랜만에 보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일행이 여섯 명인 데다 여행용 가방 5개에 유모차까지 있어 점보택시를 타고 공항 근처의 한옥 펜션에 도착했다. 서울에 비하면 기온이 온화한 데다 마당에는 탐스러운 하귤과 파릇파릇한 채소도 자라고 있는 아담한 집이라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감이 간다.

공룡랜드의 공룡상 앞에서.

공룡랜드의 공룡상 앞에서.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내가 주도적으로 일정을 짜고 운전을 했다. 점심은 관광지 주변에서 외식했지만, 아침과 저녁은 집에서 안사돈끼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색다른 음식을 뚝딱 차려 낸다. 식자재가 풍부하지 않은데도 감귤을 넣어 겉절이를 만드는 두 사람의 창의적인 손맛으로 탄생한 갖가지 요리는 입에 들어가면 씹을 여유도 없이 위에서 빨리 오라는 듯 미끄러져 내려간다.

숙소가 제주항 부근의 동문시장 가까이 있어 제철을 맞은 대방어 한 마리를 사서 회와 매운탕을 실컷 먹어 보기도 했다. 사돈과 함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새벽 수산물 공판장에 나가 경매하는 모습도 구경하고 병어를 사서 세꼬시와 조림도 해 먹었다. 서귀포 감귤농원을 방문해 손주에게 한라봉 따기 체험도 시켜주고 자녀와 친지들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손주들은 노란 한라봉을 직접 따 보고는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팬션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하귤과 채소.

팬션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하귤과 채소.

청초밭 입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의아해하면서 어떤 관계냐고 물어본다. 사돈이고 외손주라고 하자 보기 드문 일이라며 부러워하면서 여행 다니며 먹으라고 귤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자기도 얼마 전에 아들, 딸 가족과 여행을 다녀왔는데 많은 식구가 움직이다 보니 너무 힘들어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어린 손주들이라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힘이 들어 공감이 가면서도 가슴속으로 느껴지는 행복감과는 견줄 바가 안 된다.

겨울이라 제주도 날씨도 제법 쌀쌀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실내 관광지 위주로 다녔다. 코끼리의 농구하기, 그림 그리기 같은 쇼를 구경하고 바나나를 직접 먹여 주기도 하는 ‘점보빌리지’와 세계 각국의 고풍스럽고 멋진 자동차와 피아노를 관람하는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 다양한 항공기와 우주를 관찰하는 체험시설이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을 둘러봤다.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커다랗고 다양한 공룡이 전시된 ‘공룡랜드’, 거위와 염소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미니동물원이 있는 ‘청초밭’ 등도 방문했다. 손주들은 신기한 것을 책에서만 보다 실물을 보자 호기심이 생겨 좋아하다가 힘들면 안아달라고 보채 가끔은 곤란하기도 했다.

비행기에 탑승해 베개를 안고 잠이 든 손자. 귤 농원에서 귤을 잡고 있는 손녀.

비행기에 탑승해 베개를 안고 잠이 든 손자. 귤 농원에서 귤을 잡고 있는 손녀.

엄마·아빠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찾지도 않고 잘 지내서 무척 다행이었다. 밤에 손자는 내 옆에서 온 방을 굴러다니며 잠을 자다 가끔 깨어 보채기도 했지만, 새벽녘에는 할아버지 배 위로 올라와 단잠을 자기도 한다. 아침에 살포시 눈을 뜨고 배시시 웃는 모습은 너무나 천진스럽고 귀여워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손자와 열흘 동안 함께 뒹굴며 지내다 보니 더욱 가까워져 옆에 붙어 앉아 책을 읽어 달라거나 장난을 걸어오기도 한다. 너무 정이 들었는지 서울로 돌아와 월요일 어린이집에 갈 시간인데도 옷도 입지 않고 버텨 결국 하루를 빠지기도 했다.

제주 여행을 통해 손주와 더욱 친밀해지고, 평소에도 허물없이 지냈던 사돈과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 같다. 사돈이라는 관계가 어찌 보면 굉장히 어렵고 서먹서먹할 수 있는데 성격이 잘 맞는 사돈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손주들이 우리 사이를 더 가깝게 해 주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어 고마울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게 먹었던 음식과 손주들의 온갖 재롱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좋은 계절에 또다시 가족들과 함께 가보고 싶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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