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아내한테 평생 꼬투리 잡힌 크리스마스날 있었던 일

중앙일보

입력 2020.12.24 13:00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5)

출산에는 심한 고통이 따른다. 세상의 어머니는 산고를 견뎌내고 아이를 낳는다. 어리게만 보이던 딸이 두 번째 출산을 앞두고 겉으로는 담담한 척하지만, 힘든 과정을 알기에 불안한 속마음까지는 감추지 못한다. 딸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너무나 애틋하다.

딸의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는데, 사위는 지방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진통이 오면 우리 부부가 챙겨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언제 갑자기 진통이 올지 몰라 항상 긴장한 마음으로 대기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시쯤에 전화벨이 울렸다. 딸의 전화라는 예감이 들어 즉시 휴대전화를 집었다. 2시부터 진통이 있었다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여행용 가방에 출산 준비물을 챙겨놓고 그 시각에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우유에 타서 먹으며 웃고 있다.

생각과는 달리 여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큰 수박을 배 안에 넣고 있는, 펭귄 같은 모습의 딸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도착했다. 분만실에 들어간 다음 조금 지나자 멋쩍게 웃으며 나오더니 의사 선생님이 “집에 돌아가 있다가 진통이 더 자주 오면 오라”고 했단다. 둘째 아이 출산인데도 긴장이 되는 데다 기약 없이 힘든 시간을 더 견뎌야 하는 모양이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그랬을까?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영광은 없다고 하지만 출산할 때 딸의 산고를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갓 태어난 손자. [사진 조남대]

갓 태어난 손자. [사진 조남대]

오후 5시 반쯤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온다고 다시 연락이 와서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분만실로 들어간 후 조금 있다 간호사가 나오더니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이제 아기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는 모양이다. 아내도 분만실로 들어가고 나만 복도에 앉아 있다. 자식이 태어날 때보다 더 긴장되면서 당시 모습이 떠오른다.

첫째인 아들을 낳을 때는 1985년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사무실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이 시위 군중으로 막혀 출산하고 난 다음에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가자 처 외숙모가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한참 지나자 산모와 아들을 보여주었다. 갓 태어났는데도 나를 보더니 눈을 뜨고 윙크를 하는 듯했다. 지금 산고를 겪고 있는 딸을 낳을 때는 크리스마스 날이었는데 아침을 먹고 난 후 아내가 진통이 온다고 하여 20여 분 거리의 병원을 걸어서 갔다. 그때는 남편도 분만실에 출입이 안 돼 아내를 혼자 들여보내고는 ‘의사 선생님이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복도에서 잡지를 보며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쁜 공주가 태어났다고 했다. 온돌로 된 입원실에서 산모, 아기, 3살짜리 아들과 한방에서 이틀 밤을 지냈다.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아내는 출산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그 힘든 고통을 참으며 자식을 낳았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은 복도에서 잡지만 뒤적이고 있었다”라며 핀잔을 준다. 그 당시 왜 솔직하게 이야기해 기억력이 좋은 아내에게 평생 꼬투리를 잡혀 꼼짝 못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다고 해 안심이 되었다. 힘들고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아기를 낳는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pixnio]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다고 해 안심이 되었다. 힘들고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아기를 낳는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pixnio]

딸이 출산기가 있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근무 중이던 사위가 헐레벌떡 도착했다. 사위에게 상황을 설명해 준 다음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우리 부부는 복도에 계속 있을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6시 반쯤 전화가 울린다. 손자가 태어났단다. 입원한 지 12시간 만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다고 해 안심이 되었다. 힘들고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아기를 낳는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딸이 더욱 대견해 보였다. 결혼하고 이듬해 첫 딸을 낳고, 두 살 터울로 아들까지 낳은 것이다. 맏며느리인 딸의 아버지로서 한시름 놓인다.

둘째 손주 탄생으로 할아버지라는 말이 좀 더 친숙해지는 것 같다. 첫 손녀가 태어났을 때는 할아버지라고 불리니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손녀가 ‘할부지’ 하고 부르는 소리가 정겹다. ‘할부지’ 라는 멋진 이름을 선물해 준 딸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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