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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EU 투자협정 체결 ... "미국, 때를 기다려라"

중앙일보

입력

새해가 밝기 이틀 전, 중국과 유럽연합(EU)이 투자협정 체결에 합의했다는 뉴스가 급히 전해졌다. 중국이 미국의 동맹인 EU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에 국제사회가 들썩였다.

중국과 EU가 투자협정을 맺었다. [AP=연합뉴스]

중국과 EU가 투자협정을 맺었다. [AP=연합뉴스]

가장 황당한 건 당연히, 미국이다.

조 바이든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끝내고 EU를 비롯한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대응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내내 강조했었다.

제이크 설리반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는 유럽에 은근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공통된 우려에 대해 유럽과 조속히 협의할 것"이라며 "체결을 서두르지 말라"고 쓴 트윗이 그것이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미국에서 정권 교체를 앞두고 혼란한 틈을 타 중국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제대로 된 '김 빼기'다. 중국이 작정하고 미국과 EU의 관계를 훼방놓은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EU-중국 [사진 셔터스톡]

EU-중국 [사진 셔터스톡]

겉으로 보면 이 투자협정은 EU 측에 더 유리하다. 거대한 중국 시장이 더욱 열리기 때문이다.

미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순전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자동차, 화학, 통신, 의료, 금융, 운송 등 다양한 제조 및 서비스 부문의 유럽 대기업들이 승자"라고 설명한다. 이미 중국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자로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 협정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속을 까보면 다르다.

"EU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대하며, 이 때문에 중국은 지정학적 이익을 노리고 이 협정을 밀어붙인 것"(더 디플로맷)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숨 돌릴 곳'을 찾았을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유럽 기업들의 투자로 기술 발전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 등에서 인권탄압을 자행하는 공산당 정권이 정당성을 얻었다는 말마저 나온다.

가장 큰 패배자는 단연 미국이다. 여러 외신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 바이든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로이터=연합뉴스]

테레사 팔론 유럽아시아연구소 소장은 기고문에서 "중국의 승리"라며 "앞으로 미국은 EU와 손잡고 '중국 때리기'에 나서기가 전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인내심을 가지고 EU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왜냐. 우선 중국 정부가 EU와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협정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2021년 9월 메르켈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 뒤를 잇는 총리는 중국에 강경할 가능성도 크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폴란드, 이탈리아가 이미 독일과 프랑스에 공개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등 EU 내에서도 중국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단 점"(테레사 팔론)이다.

시진핑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신화=연합뉴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지 않을까.

'아직 중국-EU 관계가 굳건한 것은 아니니 때를 기다려라.'

바이든 행정부가 '때를 기다리며' 해야 할 일은 역시, EU와 제대로 된 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훼손했던 다자주의, 동맹의 가치를 되살려야만 EU와 다시 신뢰를 쌓을 수 있단 뜻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EU 역시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중국과 EU의 투자협정 체결 합의로 간접적인 혜택을 기대하는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의 미국-중국-EU 관계에 대해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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