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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금강·영산강 5개 보 해체·개방 납득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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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그제 심의·의결한 금강·영산강의 5개 보(洑) 처리 최종 방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 결론을 정해놓고 억지로 꿰맞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가 기반시설 중 하나인 치수(治水)시설의 존폐를 과학이 아닌 정치로 결정한 것이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산업자원부 장관과 소속 공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고 수사가 닥치자 증거인멸까지 서슴지 않았던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과 뭐가 다른지 분간하기 어렵다.

충분한 검토 없이 대선공약 밀어붙이기 #세금 낭비 엄청나고 주민들 강한 반발

위원회는 금강 세종보와 영산강 죽산보는 전면 해체, 금강 공주보는 상부 교량인 공도교를 유지하는 선에서 부분 해체하고 금강 백제보와 영산강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부분 해체나 상시 개방도 ‘농업용수 확보’와 ‘가뭄과 홍수 대비’라는 보의 기능을 무력화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중대 결정을 하면서 내세운 근거는 박약했다. 우선 “2017~2020년 두 강의 보 5곳을 개방하면서 관찰한 결과, 세종보와 공주보 상·하류 구간에서 멸종위기종이 관측돼 강의 자연성이 회복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질 지표가 얼마나 개선됐는지에 대한 통계 수치나 과학적 근거 제시는 없었다. 또 “2019~2020년 여름철 녹조현상이 크게 줄었다”는 위원회 발표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문 개방의 영향이 아니라 그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왔고 기온이 저하됐기 때문”이라며 사실 왜곡을 지적했다. 보를 해체하면 지하수 수위가 낮아져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지역 주민들의 호소도 철저히 묵살했다.

낭비되는 세금도 천문학적이다. 세종보와 죽산보 건설에는 각각 1287억원, 1540억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갔다. 부분 해체 결정이 난 공주보에는 2136억원이 쓰였다. 3개 보 해체 비용만 816억원이 또 들어간다. 국가와 지역 주민 모두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공주의 한 국회의원이 “얼치기 결정” “엽기적 결정”이라고 했겠나.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낙동강·한강 보는 손도 못 대면서… 충청도가 만만하냐”는 소리마저 나왔다.

이번의 무리한 결정은 ‘4대 강 보 해체 및 상시 개방’이라는 대선 공약이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때 시행한 4대 강 사업 평가절하 및 흔적 지우기의 연장선이다. 국가기반시설이 미흡한 점이 있으면 보완하면 될 텐데 왜 굳이 해체하는지, 국가 예산 5000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치수 시설을 10년도 안 돼 또다시 막대한 세금을 들여 왜 부수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힘든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위원회가 보 해체를 최종 확정하면서도 구체적 시기와 방법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나중에 직권남용 등 책임질 일을 하지 않겠다는 회피 의도가 엿보이긴 하나 차기 정부에서 더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