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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34인에 물었더니 “바이든, 대북전단법 지지할 것” 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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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바이든 당선인은 1월 20일 정오(현지시간) 취임 선서를 하고 46대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바이든 당선인은 1월 20일 정오(현지시간) 취임 선서를 하고 46대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AFP=연합뉴스]

1월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차에 새로운 동맹 카운터파트를 맞게 됐다. 정부가 연속성을 갖고 추진해온 외교안보 현안과 관련, 바이든 행정부와의 ‘정책 케미’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에 중앙일보는 한ㆍ미ㆍ중ㆍ일 외교안보 전문가 34명이 참여한 심층 설문조사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현안별 입장을 전망했다. 정통 외교로의 복귀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원칙을 고려할 때 식견 있는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분석과 예측은 상당한 함의를 지닐 수 있다. 설문은 객관식 문항 18개 및 주관식 문항 20개로 구성됐으며, 조사는 11~18일 진행했다.  

북한에 전단이나 USB 등 물품을 보낼 경우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을 향한 미국의 비판은 의회가 중심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부는 “자유로운 대북 정보 유입 증진은 미국의 우선 사항”이라며 우회적 우려만 표했다.

미리 보는 '문ㆍ바이든 정책 케미'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어떤 입장일까. 전문가 34명에게 물은 결과 ‘한국의 대북전단법 입법을 지지할 것’이란 응답은 0명이었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현안별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이 예상한 현안별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또 바이든 행정부가 ‘전단법에 반대하지만, 한국에 문제 제기는 하지 않을 것’이란 응답자는 14명(41.2%), ‘전단법에 반대하며, 한국에 문제 제기도 할 것’이란 응답자는 16명(47.1%)이었다. 티를 낼지 말지의 문제이지, 전단법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간 의견이 일치하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문제로 한ㆍ미 간에 허니문 기간도 없이 불편한 관계를 드러낼 수 있고, 한ㆍ미 정상회담 개최의 시기나 형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초기에 이 문제를 이슈화할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전단법 문제를 정보 확산과 인권 문제로 인식할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를 상대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는 민주주의이므로, 전단법은 정보 유입을 차단이란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라면서도 “다만 공개적이고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내정간섭 논란 등이 일 수 있으니 의회나 비정부기구가 문제제기하는 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갈등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정부 차원이 아닌 의회나 민간의 역할에 맡길 것"이라고 봤다.

법이 실제 적용돼 처벌되는 사례가 나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황준국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선은 우회적으로 조용히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이 관련자를 처벌하거나 대북 정보 유입을 막는 결과로 이어지면 양국이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산하 파디대학원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강화를 원하기에 웬만한 문제는 내버려 두겠지만, 모든 문제에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며 “왜 한국은 북한에는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지도 않으며 자국민을 벌주려 하느냐”고 반문했다.

'긁어 부스럼' 될라 "군사합의는 상황 지켜볼 듯"

전문가들이 예상한 현안별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이 예상한 현안별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대북전단법에 대한 이런 우려는 한ㆍ미 연합방위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국내적 비판이 거셌던 2018년 9ㆍ19 남북 군사합의에 대한 응답과도 비교된다. 34명 중 가장 많은 20명(58.8%)이 ‘바이든 행정부는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북·미 관계 등 상황을 지켜보며 반응할 것’이라며 사실상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여기서 방점은 ‘상황을 지켜보며’에 찍혔다. 20명 중 11명은 “이미 북한이 사실상 9ㆍ19 합의를 깨고 무력화했기 때문”이라거나 “어차피 이행도 안 되는데 굳이 문제 삼아 동맹 관계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썬 유명무실한 합의를 갖고 미측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취지다.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는 "과거의 남북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북한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9ㆍ19 합의와 관련해) 미국은 한반도 정책 리뷰가 일정 기간 진행된 후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3월 한ㆍ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남북 간에는 한ㆍ미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논의하게끔 합의가 돼 있다. 필요하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며 9ㆍ19 군사합의 내용을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온·오프 혼합 방식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온·오프 혼합 방식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9ㆍ19 군사합의에 따른 후속 조치가 실제 논의되기 시작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도 달라질 수 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만일 북한이 한ㆍ미 연합방위력 증강, 한국의 미국 무기 도입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할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쿠조노 히데키(奥薗秀樹)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취하며 남북관계만 앞서나가고, 미국의 행동이 제한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바이든 행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남북관계가 재개되거나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구성돼 논의가 시작된다면 미국과의 긴밀한 사전 협력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취임을 앞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 [AFP=연합뉴스]

20일 취임을 앞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 [AF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전단법 문제도 결국 미국과 소통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북한 인권을 존중한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향후 북한 인권, 비핵화 과정, 대북 안전 보장 등의 문제가 다시 충돌할 수 있으므로 한국의 인권 정책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과 가치 공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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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핵심은 어떤 정보를 유입하느냐이지, 한국도 북한에 새로운 정보를 유입할 필요가 있다는 원칙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런 기본 입장에서 미국에 설명해나갈 수 있고, 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별취재팀 이철재ㆍ유지혜ㆍ정진우ㆍ박현주 기자, 베이징ㆍ워싱턴ㆍ도쿄=신경진ㆍ박현영ㆍ이영희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

◇도움주신 분(가나다순, 외국 전문가는 무순)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용현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신정승 동서대 석좌교수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황준국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NA) 국장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브루스 베넷 미 랜드연구소 산하 파디대학원 교수 ▶비잉다 중국 산둥대 동북아학원 부교수 ▶리춘푸 중국 난카이대 교수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 ▶오쿠조노 히데키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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