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대북제재, 영변+α 약속해야 완화할 것"

중앙일보

입력 2021.01.20 02:00

업데이트 2021.01.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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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월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차에 새로운 동맹 카운터파트를 맞게 됐다. 정부가 연속성을 갖고 추진해온 외교안보 현안과 관련, 바이든 행정부와의 ‘정책 케미’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에 중앙일보는 한ㆍ미ㆍ중ㆍ일 외교안보 전문가 34명이 참여한 심층 설문조사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현안별 입장을 전망했다. 정통 외교로의 복귀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원칙을 고려할 때 식견 있는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분석과 예측은 상당한 함의를 지닐 수 있다. 설문은 객관식 문항 18개 및 주관식 문항 20개로 구성됐으며, 조사는 11~18일 진행했다.

미리 보는 '문ㆍ바이든 정책 케미'

지난해 11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당선인과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당선인과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유엔 (대북)제재의 틀 속에 있어 남북 협력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장애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지 못한 것은 국제적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이 제재를 ‘장애’와 ‘제약’으로 비유한 것 자체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체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바이든 행정부와 접근법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미·중·일 전문가 34명에게 물은 결과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진전이 없더라도 바이든 행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일부 제재 완화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명에 그쳤다.
그렇다면 어느 수준의 비핵화 조치 약속이 있어야 바이든 행정부가 움직일까. 2019년 2월 북ㆍ미 정상회담이 ‘하노이 노 딜’로 끝났을 당시 양측의 입장을 기준으로 물었더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안한 “영변 핵시설 비핵화 정도라면 바이든 행정부가 제재 일부 완화를 고려할 것”이란 응답은 8명(23.5%)이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장한 “북한이 ‘영변 비핵화+α’(은닉 핵시설 추가 공개, 비핵화 최종 목표 합의나 전체 로드맵 설정 등)는 약속해야 바이든 행정부가 제재 일부 완화를 고려할 것”이란 응답이 19명(55.9%)으로 훨씬 많았다.

'대북 제재' 둘러싼 한·미 갈등 우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비판해온 바이든 당선인이지만, 제재가 비핵화 유도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공유할 것이란 해석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협상을 모태로 하는 점진적 핵 협상안을 북핵 문제에서도 구상할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선 제재가 가장 핵심적인 협상 도구”라며 “따라서 비핵화와 별개로 남북 관계만을 위해 중요한 외교적 지렛대를 내버리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바이든 안보팀의 책사들은 기본적으로 핵 동결도 하지 않은 채 비핵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보여주기식 쇼에 불과하다고 인식한다. 제재 완화는 동결부터 한 뒤 로드맵 설정 등을 통해 비핵화가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현실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사실 대북 제재 중 핵ㆍ미사일 관련은 일부이고, 돈세탁 등 북한이 범죄 행위를 저질러 부과된 것도 있다”며 “대북 제재 관련법의 일부 조항은 북한이 인권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미국 대통령이라 해도 제재를 중단하거나 해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고 지적했다.
 리춘푸(李春福) 난카이(南開)대 한국연구센터 부주임은 “바이든 행정부도 단계적 접근법이 옳다는 것을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은 비핵화 진전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를 실행하고, 남북미중 간 4자 대화 메커니즘을 시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재에 대한 인식 차가 결국 한·미동맹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제재 완화 문제가 바이든-문 정부 간 핵심적 분쟁요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제재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시키려는 노력의 핵심 요소이며, 북한이 핵 감축을 위한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완화는 안 된다. 미국은 이런 시각을 오랫동안 견지해왔으며, 바이든 행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부차관보를 지냈고, 빌 클린턴 행정부에선 한국과장으로 북핵 협상팀의 부팀장을 맡았다.

예상되는 文-바이든 '갈등 요소'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와 관련, 전문가 34명에게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간에 가장 큰 갈등 요인이 표출될 수 있는 사안을 묻자 1위가 ‘미ㆍ중 간 신냉전’(26.9%)이었고, 문재인 정부의 ‘남북 관계 개선 우선시’가 23.9%로 뒤를 이었다. 남북 관계 ‘과속’으로 인한 엇박자가 국제적 역학 구도에 있어 지각변동급인 미ㆍ중 간 전략 갈등에 버금가는 큰 우려라고 본 셈이다.
또 문 대통령은 18일 기자회견에서 2018년 트럼프-김정은 간 싱가포르 합의를 “훌륭한 합의”라고 표현하며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하기를 희망했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은 조심스러웠다.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할 가능성을 10점 만점 척도로 질문했는데(0점은 ‘완전히 배척할 것’, 10점은 ‘완전히 계승할 것’) 평균 점수가 4.6점이었다. 중간치인 5점을 선택한 응답자가 13명이었고, 계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쪽(1~4점)이 13명, 계승할 것이라는 쪽(6~8점)이 8명이었다. 약간 부정적이거나 신중하게 볼 문제라는 시각이 많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트럼프 정책’ 얼마나 계승할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바이든 행정부, ‘트럼프 정책’ 얼마나 계승할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에 대해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임기 5년 차의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제재의 문턱을 낮추려 할 텐데, 이런 노력이 성공을 거두려면 ‘미국의 의무’와 ‘북한의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 하는 요청과 같은 수준의 요구를 북한에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관건은 우리 정부가 얼마나 상대적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느냐인데, 미국의 이해 관계만 대변한다면 남북 관계 개선은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잉다(畢潁達) 산둥(山東)대 동북아학원 국제정치경제학과 부교수는 “제재를 중시하는 미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대미 외교를 계속해 남북 관계를 위한 공간을 넓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ㆍ미 연합훈련과 관련해선 의견이 갈렸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화 동력 유지를 위해 훈련 규모를 축소하거나 연기할 수 있을 것이란 응답이 44.1%, 이전 수준의 규모로 복원해 예정대로 실시하길 원할 것이란 응답이 20.6%, 기타가 35.3%였다. 기타를 택한 응답자 대부분은 “북한의 도발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거나 “원칙은 원상 복원이지만, 올 3월 훈련은 코로나19와 임기 초 상황 관리 등의 변수로 인해 축소할 수 있다” 등의 전제를 달았다.
이와 관련,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과 마찬가지로 북한과도 협상을 통한 해결을 추구할 것이고, 연합훈련에 대해선 동맹의 근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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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 3월 연합훈련의 개최 여부와 규모 등은 바이든 시대 한ㆍ미 동맹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며 “한국이 북한만 고려해 불명확한 태도를 보이거나 이를 축소하려 한다면 동맹은 약해지고 남북 관계 개선의 성과도 얻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별취재팀 이철재ㆍ유지혜ㆍ정진우ㆍ박현주 기자, 베이징ㆍ워싱턴ㆍ도쿄=신경진ㆍ박현영ㆍ이영희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

◇도움주신 분(가나다순, 외국 전문가는 무순)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용현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신정승 동서대 석좌교수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황준국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NA) 국장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브루스 베넷 미 랜드연구소 산하 파디대학원 교수 ▶비잉다 중국 산둥대 동북아학원 부교수 ▶리춘푸 중국 난카이대 교수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 ▶오쿠조노 히데키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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