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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봐라" 이낙연 이익공유 해외사례, 짜깁기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본주의 선진국인 미국의 크라이슬러, 영국 롤스로이스, 일본 도요타도 이익공유제 개념으로 성과를 거뒀다. 이 나라들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볼 수 없다.”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낙연 대표는 이익공유제의 해외 사례를 이렇게 열거했다. 야당에서 “발상 자체가 유치하다. 실현 불가능한 방안”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회주의적 발상”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이라고 깎아내리자 반박 사례를 들고 나온 것이다.

같은 날 오후 ‘코로나 불평등해소 TF’의 1차 회의를 마친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국내, 해외 사례를 검토했다”면서 “예를 들어 미국 보잉사는 협력사와 이익을 30년 동안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있는 기자들에게 들고 있던 사례집을 펼쳐 보여주기도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홍익표 코로나 불평등 해소 TF 단장(왼쪽), 이해식 의원 등이 15일 TF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홍익표 코로나 불평등 해소 TF 단장(왼쪽), 이해식 의원 등이 15일 TF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해외 이익공유제 사례를 입맛에 맞게 짜깁기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말하는 이익공유제는 “‘착한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이나 법학에서는 처음 듣는 정치적 개념”이란 말도 나왔다.

위험은 쏙 빼고 이익만 공유하자?

한국법제연구원이 중소벤처기업부의 요청으로 2017년 낸 연구보고서 ‘협력이익배분제 해외사례에 관한 연구’에 이 대표가 언급한 롤스로이스의 이익공유 사례가 나온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다. 보고서에서는 ‘롤스로이스의 위험-수익 공유파트너십’으로 소개한다. 위험도 공유 대상에 포함하는데 민주당은 이 부분은 생략했다.  

'협력이익배분제 해외사례에 관한 연구'(한국법제연구원, 2017)에 소개된 영국 롤스로이스의 '위험-수익 공유 파트너십'

'협력이익배분제 해외사례에 관한 연구'(한국법제연구원, 2017)에 소개된 영국 롤스로이스의 '위험-수익 공유 파트너십'

“1970년대 새 항공기 엔진 개발에 나선 롤스로이스가 연구·개발에 필요한 비용 10억 달러를 모으기 위해 세계적인 부품사와 위험과 비용을 공유. 이 파트너십은 매출액을 투자액에 비례해 나눠 주는 것이 핵심” (협력이익배분제 해외사례에 관한 연구, 2017)

경제법을 전공한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익을 공유하려면 손실도 공유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손실은 쏙 빼고 이익만 나누자고 한다”면서 “편향적인 방식이라 실현이 어려운 개념”이라고 말했다.

홍 정책위의장이 예로 든 미국 보잉사의 이익공유에도 똑같은 오류가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17년 정부출연기관인 중소기업연구원에 의뢰해 펴낸 연구보고서 ‘협력이익배분제 법제화 관련 연구’에선 보잉사의 사례를 ‘위험공유 파트너십 계약’이라고 명명했다.

이 보고서를 쓴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은 “비행기 설계는 위험이 큰 사업이라 보잉이 협력사와 성공했을 때 수익과 실패했을 때 부담을 모두 나누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원장은 “보잉사의 사례는 투자 내지는 R&D(연구·개발) 개념에 가까워서 민주당이 말하는 코로나 이익공유제와는 결이 안 맞는다”고 말했다.

'협력이익배분제 법제화 관련 연구'(중소기업연구원, 2017)에 소개된 미국 보잉의 위험공유 파트너쉽 계약

'협력이익배분제 법제화 관련 연구'(중소기업연구원, 2017)에 소개된 미국 보잉의 위험공유 파트너쉽 계약

이런 지적은 20대 국회에서도 나왔다. 2016년 11월 8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조배숙 전 민주평화당 의원이 “협력이익배분제는 원래 미국 등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자, 정만기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그게 이익이라는 용어만 그렇지 제도가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 자리에는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있었다.

‘사후 계약’ ‘인센티브 법제화’ 전 세계 사례 없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 내 '네이처컬렉션'을 찾아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모범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 내 '네이처컬렉션'을 찾아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모범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이낙연 대표는 14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LG생활건강의 한 오프라인 가맹점을 찾았다. 본사가 온라인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맹점과 나눈 점이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모범사례라고 칭하면서다. 비슷한 해외사례로는 던킨, 도미노피자 등을 꼽았다. 이 부원장은 “이 경우 기업 간의 사전 계약이 있었던 건데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수혜 기업와 피해 계층이 서로 계약 관계가 없다는 게 차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익공유를 사후에 계약하는 것은 처음 듣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여당이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검토 중인 세제 특혜, 금융 지원 법제화도 해외에는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 박충렬 박사(경제학)는 “해외 사례는 정부가 유도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한 경우”라면서 “이익공유에 참여한 기업에 줄 인센티브를 법제화한 사례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9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이익공유제 해외사례를 왜곡하거나 꼼수를 쓴 게 아니다. 위험도 당연히 공유하는 것인데 이것을 뺐다고 사실을 왜곡했다고 보도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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