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에이즈 위기에 '무력' 대처 논란

중앙일보

입력

중국 정부가 열악한 의료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무력을 동원, 강압적으로 대처하면서 각국의 에이즈 운동가와 인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이 18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중국 허난(河南)성 슝차오 주민들은 지난 6월21일 밤 500명 이상의 공안, 지방 관리, 청부 폭력배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이들은 마을을 돌며 주민들을 위협하고, 창을 부수는가 하면 방해가 되는 주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이날 밤 공안은 주민 18명을 구금했으며 8세 어린이를 포함 10여 명이 부상했다.

슝차오 주민들이 이 같은 탄압을 받은 것은 며칠 전 에이즈 치료를 위한 의료 진 확보와 약품 공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기 때문. 슝차오에서는 90년대부터 비위생적인 매매혈로 인해 마을 주민의 상당수가 에이즈에 감염됐다.

당국의 미온적인 에이즈 대책에 불만을 품어온 주민들은 한 마을 여성이 가족을 위해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겼다가 당국에 체포되자 이를 계기로 폭발, 현지 보건당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보건 청사로 몰려간 주민 100여명은 이 여성의 석방과 더 나은 의료환경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는 관리들과 충돌하고 2대의 정부 차량을 도랑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처럼 에이즈 대책을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현지 정부가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알려지자 에이즈 운동가들은 중국에 에이즈 기금을 지원하기 이전에 중국 당국에 인권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정부 에이즈 보고서를 유포한 혐의로 구금됐던 에이즈 운동가 완얀하이는 "중국에 돈을 주려면 인권 보호를 우선 요청하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유엔에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 기금 명목으로 1억달러를 요청한 상태이어서 이번 사건으로 더욱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또 높은 경제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는 에이즈는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이즈 퇴치를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과 전국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에이즈 퇴치 운동 조직, 정보의 자유로운 유입이 전제돼야 하지만 현 중국 지도부는 에이즈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의 기회조차 차단하는 등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대폭 도입하면서 보건 체제의 비효율성이 가중되고 병원들도 비효율적인 운영방식을 유지한 채 비용 절감과 불완전한 개혁에만 매달려 그 피해가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슝차오의 에이즈 환자인 슝창순은 "우리 마을의 에이즈 실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심각하지만 지방 정부는 체면만을 생각할 뿐 실태가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중앙 정부가 나서서 이 지역의 에이즈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요청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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