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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소위 통과…21대가 법 만들고 책임은 다음 국회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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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왼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안소위 회의실로 들어가는 동안, 강은미 원내대표 등 정의당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제정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백혜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왼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안소위 회의실로 들어가는 동안, 강은미 원내대표 등 정의당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제정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 시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에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국회 법사위는 7일 오전 법안소위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공포 1년 뒤 시행된다.

여야는 지난 5일부터 사흘간의 릴레이 회의에서 정부제출 법안의 쟁점 사항을 논의했다.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징역형을 부과하는 원안의 골격은 유지하되, 형량과 적용 대상은 축소했다.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소위 의결 직후“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선 할 수 없었던 경영자 처벌을 명문화한 건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경총은 성명서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최고의 처벌규정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과 형법상의 과잉금지원칙과 책임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참담함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반대로 적용 범위가 축소됐다는 불만을 나타냈다. “(적용 대상에서 빠진)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사람도 아니냐”(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는 논리였다.

①무엇이 달라지나?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중소기업단체 임원들은 6일 오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경제계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곧 도래할 것” “소상공인들이 멸망할 지경에 와 있다” 등 격한 표현으로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연합뉴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중소기업단체 임원들은 6일 오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경제계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곧 도래할 것” “소상공인들이 멸망할 지경에 와 있다” 등 격한 표현으로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연합뉴스

법안의 핵심은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의 처벌이다. 1명 이상이 숨지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제까지 산안법에선 안전관리책임자만 처벌해 왔지만, 앞으론 기업 CEO가 직접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일하다 죽는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근절되고 산업 안전을 위한 사회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도급 업체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도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기업이 제삼자에 도급·용역·위탁 등을 한 경우 원청 기업에 안전 책임을 부과하기로 규정해서다.

다만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법에 넣지 않기로 해, 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해 처벌된다. 당초 박주민 민주당 의원 안에선 안전·보건조치를 5년간 3회 이상 위반하면 중대재해 발생 사실만으로 책임을 추정하도록 규정했는데,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이 조항은 위헌 논란이 많아 이를 삭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②형량과 적용범위는 축소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오후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장을 방문해,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오후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장을 방문해,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량은 원안보다 축소됐다. 당초 강은미 정의당 의원 법안엔 징역 3년 또는 벌금 5천만원이, 박주민 의원 안엔 징역 2년 또는 벌금 5억원이 처벌 하한선(下限線)이었다. 여야의 합의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다. 징역형 하한선은 줄였고, 벌금형 하한선은 없앴다.

막판까지 논란이 일었던 쟁점은 적용범위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전날 ‘5인 미만 사업장’엔 사업주 처벌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정의당은 “3년간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1389명)중 22.7%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며 적용을 주장했다.

여야는 5인 미만의 사업장 적용 제외를 최종 결정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가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되지 않더라도 (그 업체에 일을 맡긴) 원청업체 경영 책임자에겐 책임을 지운다”(백혜련 민주당 의원)는 이유에서다.

③내년부터 사업장 5만 곳 일괄 적용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배진교, 이은주, 장혜영, 류호정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장 앞에서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배진교, 이은주, 장혜영, 류호정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장 앞에서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법 적용 유예 기간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두기로 했다. 50인 이상 사업장 5만205곳(2018년 말, 통계청 기준)엔 중대재해법이 내년부터 곧바로 적용되는 것이다.

전날까지 ‘2년 시행 유예’를 두는 방안이 오갔던 50~99인 사업장도 1년 뒤 곧바로 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인적·재정적 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너무나 가혹한 법이다. 50인 이상 중소기업도 최소한 2년 이상의 준비 기간을 달라”(중소기업단체협의회 논평)이란 요구가 나온다.

반대로 노동계에선 5~49명이 일하는 사업장에 법 적용 3년 유예 부칙을 둔 것을 비판한다. “지난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재해 중 76.6%가 발생했고, 사망은 50인 미만 사업장이 61.6%에 이른다”(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국회가 일선 현장에 영향이 큰 법안을 무턱대고 제정해놓고, 유예기간만 길게 설정한 것을 문제 삼는다. 전체 사업장의 98.8%에 달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시행 시점은 이 법을 만든 21대 국회가 종료되는 2024년이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는 입법을 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부담만 덜기 위해 몇 년씩 유예기간을 두고 나중에 법을 다시 고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미래 상황을 제대로 예측할 수 없으면서 유예기간만 걸어둔 채 법을 만들면 불안정성이 커진다”고 비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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