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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김기태-기아 이종범, 초중고교 선후배 주장으로 맞붙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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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33.기아)과 김기태(34.SK)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양 팀의 주장인 두 선수는 맨 앞에서 싸워야 한다.

정상대로라면 두 선수는 한팀에서 뛰어야 했다. 김기태는 이종범의 학교 2년 선배다. 광주 서림초등학교부터 광주일고까지 인연이 꽤 길다. 지금도 그렇지만 김기태는 리더십이 뛰어났다. 자유분방한 천재 이종범을 야구에 매진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김기태다. 이종범은 "어렸을 때 기태형에게 방망이를 선물받으면 너무 좋았다"고 가끔 회상한다. 그만큼 김기태를 따른다.

그러나 김기태는 연고팀 해태에 입단하지 못했다. 왼손타자와 1루수가 많았던 해태가 1991년 야수 김기태보다는 투수인 오희주를 선택한 탓이다. 이후 김기태는 이승엽(삼성) 이전까지 프로야구의 최고 왼손타자로 활약했다. 김기태는 해태 스카우트의 최악의 실수로 꼽힌다.

이종범은 반대다. 93년 해태 김응룡 감독은 유격수 이종범과 투수 성영재를 놓고 네 번이나 동대문구장을 찾을 정도로 고민하다 이종범을 선택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종범은 해태의 핵이자 최고의 야수로 성장했다.

김기태가 고향 광주에 돌아왔다. SK의 주장 완장을 차고 팀과 자신의 첫 우승을 위해서다. 쌍방울-삼성-SK를 거치면서 개인통산 최다 만루홈런(8개)과 한 경기 최다 안타(6개), 역대 통산 사사구 2위 기록 등을 갖고 있는 '해결사'지만 한번도 우승을 못했다.

올 정규시즌에 부진했던 그는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맹타(3타수 3안타)를 휘두르며 부활했다. "우승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조범현 SK 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도 김기태를 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태는 기아에 무척 강하다. 올시즌 기아전에서 14경기에 출전해 45타수 17안타로 타율 0.378이다.

이종범도 기아의 주장이다. 그도 SK에 강했다. 국내 최고로 꼽히는 SK 포수 박경완 앞에서 8개의 도루를 하면서 SK의 혼을 빼놨다. 특히 후반기 6승2패로 압도적 우세를 보인데는 이종범의 공이 크다.

적어도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동안에는 까까머리 학생 시절 방망이를 선물하던 아름다운 과거는 추억일 뿐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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