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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는 야생동물의 보복?

중앙일보

입력

1989년 6.4사태 당시 천안문(天安門)광장에서 농성 중이던 한 학생이 비장한 결의를 발표하겠다고 공표, 많은 내외신 기자가 몰렸다. 분신자살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긴장이 흘렀다.

그러나 이윽고 터져나온 학생의 외침은 '민주화 촉구를 위해 앞으로 24시간 단식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많은 외신 기자가 맥이 풀리고 말았지만 중화권 출신 기자들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중국인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먹는 것을 중히 여기는 중국에서도 유달리 음식에 애착을 가진 지역이 있다. 바로 광둥(廣東)성이다.

중국인들의 이상적인 삶을 나타내는 말에 '경치 좋은 쑤저우에서 태어나 항저우의 비단옷을 입고 광저우 요리를 즐긴다(生在蘇州 穿在杭州 食在廣州)'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한데 이 광둥 요리가 최근 중국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다. 사스(SARS)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까닭이다. 좀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홍콩 의료계는 사스 바이러스가 야생 동물에게서 사람에게 옮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언론은 남방 사람들이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마구 먹다보니 사스 바이러스 같은 괴질에 감염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네 발 가진 것 중에선 책상, 날아다니는 것 중에선 비행기, 물 속에선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욕이 대단한 남방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남획해 먹다가 사스란 괴질을 불러들이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중국 내 사스 첫 감염자가 바로 홍콩에 이웃한 선전(深川)에서 야생동물을 요리해 파는 식당 주방장이며, 초기 감염자 상당수가 야생동물 요리사였다는 점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사실 광둥 사람들의 야생동물 요리는 중국 내에서도 유명하다. 원숭이.쥐.도롱뇽 등 각종 동물을 재료로 한 요리가 몸을 보해 주는 '야생의 맛(野味)'이란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팔리기 때문이다.

뱀의 해를 맞았던 2001년 춘절(春節.설) 연휴 때는 '뱀의 해엔 뱀을 먹어야 운이 좋다'는 기막힌 슬로건 아래 이미 중국에서 보호 야생동물로 지정된 뱀이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선전 일대에서만 하루 평균 10t의 뱀들이 식탁에 올랐다고 하니 뱀 한마리를 1kg으로 계산할 경우 하루에 1만마리의 뱀이 식탁의 제물로 사라진 것이다.

최근 중국 야생동물보호협회의 천룬성(陳潤生)비서장은 "최근 들어 중국 사람들이 유행처럼 야생의 맛을 탐닉하는 데 대한 야생동물의 보복이 바로 사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경제 발전에 따라 주머니가 두둑해진 일부 중국인들이 과시나 호기심 차원에서 무분별한 야생의 맛 찾기에 나서고 있다는 개탄이다.

사스 파동이 중국인들의 야생동물 보호에 획기적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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