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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전문가들 '그때 그시절'

중앙일보

입력

"예전엔 사나운 놈이 아니었는데…." 바이오기업 지노믹트리의 안성환 대표는 요즘 코로나바이러스와 4년간 함께 한 텍사스주립대 시절을 자주 떠올린다.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사스(SARS)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이 벌인'소행'으로 밝혀진 이후 사스와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착잡한 심정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닭.개.쥐.돼지 등 여러 종류의 동물에 감염되기도 하고 사람에게는 가벼운 감기 증세를 보이다 사라지는 '온순한' 바이러스다.

'코로나(corona)'는 라틴어로 '관(冠)'이라는 뜻으로 모습이 왕관처럼 생긴 데서 붙여졌다. 유전물질이 에이즈.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같이 DNA가 아닌 RNA며, 3만개의 염기가 한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지놈 크기가 큰 편이라 유전물질 분리가 다소 까다롭지만 키우기 쉬워 RNA바이러스에 관심을 갖는 과학자들이 연구 소재로 애용해왔다.

안대표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논문도 많이 발표해 솔직히 애정을 느낀다"면서도 "그러나 '점프' 때문에 망나니짓을 할수 있다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 특유의 돌연변이 발생률이 높을 뿐 아니라 RNA중합효소가 지놈을 복제하면서 이곳저곳으로 점프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 재조합 빈도가 높다는 점이 우려됐던 것이다.

RNA 바이러스 대부분의 재조합 빈도가 제로에 가까운데 반해 코로나바이러스는 무려 25%에 이른다.

RNA바이러스 전문가인 서울대 김선영(생명과학부) 교수는 "사스는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바이러스 지놈이 점핑으로 뒤섞이면서 사람에게 감염되는 성질을 띤 변종이 출현했고, 결국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한 때 코로나바이러스와 '동고동락'한 연세대 오종원(생명공학과) 교수는 요즘 전의에 불타고 있다.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미국 남가주대의 마이클 라이 교수 밑에서 했던 중합효소 연구가 잘만 하면 사스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15일 발표된 사스 바이러스의 유전자 배열구조와 자신이 갖고있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비교해보니 중합효소의 아미노산 서열이 80% 가까이 유사성을 보였다.

오 교수는 "미국에서도 사스 퇴치에 수백만달러의 연구비가 급조되는 등 RNA바이러스 전문가들이 대거 코로나바이러스로 몰려들고 있다"며 "RNA바이러스의 특성상 백신 개발보다는 치료제 개발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되며 치료제 개발에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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