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헌혈 가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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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촌세브란스 병원은 지난 8일 오후 한때 O형 혈액이 부족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급히 구해왔다. 이날 따라 피가 예정량보다 많이 필요한 환자가 여러명 생기면서 이런 일이 생겼다. 하마터면 진료에 차질을 빚을 뻔한 것이다.

피가 부족하다. 헌혈하는 사람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혈액 부족으로 응급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9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올 9월 현재 헌혈자는 1백86만3천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가 줄었다. 특히 8,9월 두달간은 지난해보다 각각 11.1%, 7.5% 줄었으며 10월 들어서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박정규 적십자사 헌혈홍보실장은 "매년 방학이나 휴가가 끼여 있는 여름과 겨울에 피가 부족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8~10월에 헌혈자가 감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적십사자 산하 전국 16개 혈액원이 갖고 있는 적혈구 농축액(PRC)은 3일치 1만3천3백74봉지로 적정 재고량(7일치)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혈소판 농축액(PC)은 3일치를 갖고 있어야 하나 하루치인 4천3백75봉지밖에 없다.

의료 현장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4백50봉지의 PRC를 갖고 있어야 하지만 9일 현재 1백20봉지만 확보했다. 이 같은 사태가 계속되면 간 등 장기이식 수술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게 적십자사의 설명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지닌 PRC도 적정량의 절반 가량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혈액 부족 현상은 지난 추석 이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헌혈자가 줄어드는 수혈에 의한 에이즈 감염, 간염 바이러스 오염이 의심되는 혈액의 유통, 혈액의 과도한 폐기 등 혈액관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헌혈하더라도 제대로 사용하거나 관리할지를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지난 7월 말라리아 주의 지역에서 헌혈이 금지돼 군인들의 헌혈이 크게 줄었다. 지난 8,9월 두달간 헌혈한 군인은 9만5천여명으로 지난해 13만여명에 비해 크게 줄었다. 군인은 전체 헌혈자의 29%를 차지한다.

적십자사는 11월 이후 기온이 떨어지면서 감기와 독감이 유행할 경우 헌혈자가 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적십자사 이충영 공급과장은 "보유 중인 혈액을 긴급한 지역에 먼저 배분하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으나 이런 식으로 조절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ssshi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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