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출신 한의사 1호 로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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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의 '강남 인 한의원'은 겉모습으론 여느 한의원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는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환자의 맥을 짚는 한의사가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서양인이기 때문이다. 한의학과 서양인, 어딘가 부조화(不調和)스러운 듯도 하지만 처방을 내리는 모양새는 영락없는 한의사다. 그것도 유창한 우리말이다.

"기가 허하니 보양에 신경 좀 쓰셔야겠는데요."

지난해 12월 개업해 외국인 최초의 한의사가 된 라이문트 로이어(38)는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산간 마을 출신이다. 1987년 한국 땅을 밟은지 15년 만에 한의사가 됐다.

"한국은 제게 제 2의 고향과 같습니다. 새로운 삶과 가족을 주었으니까요."

오스트리아 그라츠대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4년간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 둔 로이어는 동양의 신비를 찾아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던 그 시절 처음 찾은 곳은 태권도장이었다. 태권도에 심취했던 그는 운동을 하던 중 발목을 다쳐 종로의 한 한의원에서 처음 침술을 경험하게 됐다.

"신기하더라고요. 그냥 바늘 같은 것으로 찔렀는데도 통증이 다 사라지니 말입니다."

그는 89년 연세대 어학당과 강릉대에서 우리말과 동양철학, 한문 등을 배우며 한의학 공부를 위한 기초 지식을 쌓았다.

막상 시작한 한의학 공부는 녹록지 않았다. 적지 않은 공부량도 부담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기(氣)를 비롯해 생소한 한의학의 기본 개념들이 그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의 한의학을 세계화하려면 각종 용어들을 외국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학창 생활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때마침 한.약 분쟁을 만나 두 번 유급 당한 끝에 99년 서양인 최초로 한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했다. 그 사이 부인 권정근(33)씨를 만나 98년 결혼했다.

수련의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2000년 9월 로이어는 10여년 만에 고향 오스트리아를 찾았다. 그러나 대형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당시 네 살된 첫 딸 샤클린(한국 이름 은비)도 잃었다.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한국 동료 한의사들의 도움과 격려로 8개월의 투병 끝에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병상에 누워 새로운 삶을 준 한국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한의학을 세계에 전파시키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한의학 개론서를 준비 중인 로이어 원장은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외국어로 된 교재를 갖고 외국인 강사가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합니다. 저처럼 무식하게 공부하겠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요."

그는 또 미국 등에서 한국 한(韓)의학이 중국 한(漢)의학에 밀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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