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대선 자금으로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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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비자금 수사는 어디까지 갈까'.

정치권이 뒤늦게 이 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선거 때 돈이 들어가는 구조적 비리에 대해 수사할 것"이란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의 언급을 주목하면서다.

각종 추측과 억측은 극도의 긴장감을 낳고 있다. 검찰이 소환을 통보한 지 사흘 만에 국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받은 게 없다. 문제 없다"며 한결같이 결백만 주장하던 3당의 목소리도 변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9일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헤매는 상황에서 신당의 총선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대통령 측근까지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판을 바꿔 보겠다는 것으로, 정치권 전체를 뒤엎으려는 의도"라고 '신당 띄우기 음모론'을 제기했다.

홍사덕 총무는 "(최돈웅 의원이) 10일은 국감 때문에 출두하지 못한다. 14일 이후나 생각해 보겠다"며 일단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민주당에선 "지난 대선 때 쓴 (구 민주당)자금의 내역이 틀리는 것 아니냐"며 슬쩍 불을 지폈다. 이상수 총무위원장이 소환된 통합신당은 갑자기 공세로 돌아섰다.

김원기 주비위원장은 "검찰이 성역 없이 철저한 수사를 해주기 바란다"고 했고, 이해찬 의원은 최도술 전 비서관과 관련, "대통령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엄정 처리하고 이를 계기로 정치권의 검은 돈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은 지난 7월 盧대통령의 긴급 기자회견을 떠올리고 있다. 당시 盧대통령은 "대선 후보 확정 이후의 정당 활동에 들어간 자금까지 전면 공개하고 검찰이든 특검이든 수사기관에 철저히 검증받자"고 제안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검찰이 SK 비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야의 주변 계좌는 거의 다 뒤졌다고 봐야 한다"며 "결국 SK 비자금 수사는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 의원은 "최돈웅 전 재정위원장을 수사했다면 다른 기업들에서 받은 돈도 거의 노출됐을 것"이라며 "이상수.최도술을 끼워넣었지만 결국 타깃은 한나라당으로 봐야 한다.

盧대통령이 판을 새로 짜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돈웅과 최도술의 죄질이 나쁘다'고 했던 대검 중수부장의 언급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번 문제와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수사의 범위가 확산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盧대통령이 구상하는 정치개혁의 핵심은 검은 돈과 부패의 척결에 있다"며 "이런 점에서 이번 검찰 수사의 파장이 생각보다 커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여운을 남겼다.

盧대통령의 측근인 부산정개추 정윤재 위원장은 "盧대통령은 '큰돈 들이지 않고 선거를 치르고, 그 돈은 합법적으로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내년 총선은 기존의 선거풍토를 완전히 바꾼 가운데 치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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