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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종인 사과’ 강한 야당 거듭나는 계기 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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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은 두 전직 대통령 구속은 한국 현대사의 불행이지만, 본인이나 소속 당의 책임자가 사과한 적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당내에선 사과가 여당에 대한 굴종이고 당의 분열만 가져올 것이란 주장도 있다. 소위 ‘민주당 2중대 선언’이란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힘 있는 야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 대국민 사과의 적기일 수 있다.

거여 정권 폭주에도 존재감 없는 야당 #말보다 실천…구태·악습 확 벗어던져야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7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과 ‘미래통합당’을 거쳐 3년 사이 세 번째 바뀐 당명이다. 하지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국민 마음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지리멸렬을 거듭했다. 네 번의 전국 선거에서 내리 4연패한 뒤 지금은 딱히 내세울 만한 대선 주자 한 명 없을 정도로 민심의 외면을 받고 있다. 국민의 눈에는 여전히 과거에 안주하는 ‘웰빙 정당’ ‘꼰대 정당’의 이미지 그대로다. 말로만 환골탈태하겠다고 했을 뿐 끊어내야 할 것들을 제때 치열하게 끊어내지 못한 결과다.

더 큰 문제는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절박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권 정당의 자격과 능력을 보여줘 집권여당을 긴장시키고 국정 운영을 되돌아보게 하는 게 강한 야당이다. 거대 여당이라도 야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높다면 국정 독주를 할 수 없다. 다음 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경계심이 여당을 자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정반대다. 거여와 정권의 안하무인식 폭주에도 아무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야당이다. 오죽하면 여당 소속 이재명 경기지사로부터 ‘국민의짐’이란 소리까지 듣고도 제대로 된 반박조차 없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현재 정권은 최악이고 야당은 최약체다. 대한민국 야당을 국민이 애타게 찾고 있다”는 ‘야당 실종론’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많은 국민이 집권 세력의 국정 폭주를 비판하면서도 대안 세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의힘은 이대로 가면 정말로 당 자체가 사라지고 말 것이란 절박감을 갖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당 자체를 완전히 해체한 뒤 새로 설계하는 수준의 개혁에 당장 나서야 한다. 과거를 반성하고 과거의 잘못된 인식,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기득권과 자리 보전에만 연연해 쇄신은 흉내만 내는 악습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더 혁신하고 젊어져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 그것만이 강한 야당이 되고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하는 길이다. 김 위원장은 사과와 함께 ‘정당을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 쇄신’을 다짐했다. 말보다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