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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스마트교육' 삐끗··태블릿PC 학교 보급 취소,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한 중학교 교실에 학생들에게 지원할 태블릿PC가 놓여있다. 뉴스1

지난 4월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한 중학교 교실에 학생들에게 지원할 태블릿PC가 놓여있다. 뉴스1

디지털교과서 활용을 위해 정부가 학교에 태블릿PC 9만여대를 보급하는 사업이 갑자기 취소됐다.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선정한 1위 업체가 제안한 중국산 기기의 질이 낮다는 이유다. 반면 업체 측은 "성능에 문제가 없는데도 엉뚱한 이유를 들어 사업을 취소했다"고 법적대응에 나섰다. 정부 차원의 기기 보급 계획이 좌초되면서 디지털교과서 정책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14일 교육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진흥원)에 위탁해 실시한 5차 학교 스마트단말 도입 사업이 최근 취소됐다. 이 사업은 정부가 디지털교과서를 활성화하겠다며 2017년부터 시작됐다. 올해 5차 사업은 446억원, 9만여대 규모로 지난 5월 입찰 공고가 나왔다.

“1위 업체 태블릿 수준 낮아 사업 취소”

교육부 등에 따르면 평가 결과 1위로 우선 협상 대상자가 된 아이스크림미디어 컨소시엄은 ‘자체 제작 태블릿’을 내세웠다. 대기업 제품을 내세운 타 업체보다 저렴한 가격이 강점이었다. 진흥원 관계자는 “기술 평가에선 3위였지만 가격 평가에서 워낙 싸서 결과가 뒤집혔다”고 말했다.

문제는 제품이 실제로 제안서에 나온 규격을 충족하는지 따져보는 기술 협상 과정에서 나왔다. 정운영 진흥원 공공통신서비스팀장은 “제안서에는 직접 개발, 제조한다고 쓰여 있는데 확인해 보니 중국에서 팔리는 제품이었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업체가 갑자기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과 ODM(제조자개발생산) 방식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밝혔다. 정 팀장은 또 “제안서에는 구글 프로텍트 기능이 된다고 하는데, 확인 결과 구글 인증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진흥원은 지난 11일 아이스크림미디어와 협상 결렬을 통보했고, 사업 발주기관인 교육청 의견에 따라 사업은 취소됐다. 최민호 교육부 원격교육인프라구축과장은 “우선 협상 대상자가 제출한 시범 기기가 형편없는 수준인데, 보완 요청하고 협상하는 과정이 너무 지연되니까 교육청 의견에 따라 취소됐다”고 말했다.

업체 측 반발 “써보지도 않고 취소…법적 대응 할 것”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은 갑작스러운 사업 취소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라는 지적에 대해 아이스크림미디어 관계자는 “대기업도 중국 주문생산을 하는게 일반적인 제조 방식인데 편파적인 주장”이라며 “진흥원이 당초 요구에도 없던 구글 인증 문제까지 꺼내 협상을 지연시켰다”고 말했다.

기기 성능이 낮다는 지적에 아이스크림미디어 관계자는 “우리 기기는 애플에도 납품하는 폭스콘 제품이라 성능에 문제가 없는데 써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며 “디지털교과서 개발에도 참여한 우리가 최적의 성능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반박했다. 업체 측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입찰 평가에서 2위를 차지한 롯데정보통신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도 반발했다. 정성주 폭스소프트 대표는 “1위와 협상이 결렬됐다면 2위가 우선 협상 대상이 돼야한다”며 “우리는 정부가 요구한 2월 말까지 충분히 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사업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2위 컨소시엄 업체들은 정부를 상대로 입찰 취소 중단과 우선 협상 대상자 자격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그린 스마트 교육을 시행 중인 서울 중구 창덕여자중학교를 방문해 스마트 교육에 활용하는 태블릿PC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그린 스마트 교육을 시행 중인 서울 중구 창덕여자중학교를 방문해 스마트 교육에 활용하는 태블릿PC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학교·교육청 개별 구매해야…보급계획 차질

정부 차원의 보급 사업이 취소됨에 따라 5차 단말기 물량은 각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IT 업계 관계자는 “개별 구매를 하게 되면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사후 관리나 서비스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말기 보급이 늦어지면서 당장 내년의 디지털교과서 현장 적용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기기 구매 과정에서 가격 조건의 비중이 너무 커서 발생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 교육부 최민호 과장은 “5년간 써야 할 기기라 가능한 완성도 높은 제품을 사야 하는데 조달청 기준에 따라 가격 점수를 상당수 반영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다”며 “기술 수준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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