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스로 '국제 고립'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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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중국이 국제적인 고립의 난국에 처하고 있다. 중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잇따라 귀국 길에 오르고, 중국인 여행객들의 입국에 손을 내젓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중국 대륙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제적인 전시회와 회의는 물론이고 상담마저 뚝 끊겼다. 마오쩌둥(毛澤東)시대의 이른바 '죽(竹)의 장막'에 빗대 '사스의 장막'이 다시 쳐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일각에선 "중국의 급부상을 경계한 미국이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며 '미국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보다 "중국 정부가 사스 발생 초기에 실상을 은폐하는 등 대응을 잘못해 화를 자초했다"며 '중국 책임론'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홍콩의 권위지 명보는 23일 중국 외교부의 내부 문건을 인용해 중국 대륙의 사스 확산 추세에 각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2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문건은 "말레이시아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들에 대해 입국 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공무원.기업인들의 방문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장(浙江)성의 외사(外事)담당자는 "중국인 입국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공무 출장의 경우에도 일주일 이상 격리 조치를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진단.격리 비용을 중국인에게 부담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이탈리아.뉴질랜드 등 10여개국이 사실상 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하루가 다르게 각국의 비자 발급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중국의 사스 확산에 강력한 처방을 검토하고 있다. 사스 감염을 막기 위한 '여행 자제 경보'를 중국의 몇몇 지역에서 대륙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WHO 관계자는 "특정 지구에 대한 전면 경보는 57년간의 WHO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격론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럴 경우 중국은 '사스 위험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격리조치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지방 정부가 사스 실태를 계속 감추고 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상하이(上海)에선 각국의 기업인들이 참가하는 두 건의 국제회의가 계획됐으나 "인구 1천6백만명의 상하이에 사스 감염자가 두 명밖에 없다는 발표를 믿을 수 없다"며 주최 측이 회의를 취소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사스 때문에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세계의 공장'이란 국가적인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외국 기업들의 투자.수출 상담이 줄고 있는데다 관광산업 역시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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