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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믿지마"…시진핑식 국유경제 바람 부는 중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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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민퇴(國進民退)’

지난 2018년 중국 개혁개방정책 40주년 경축 행사가 열려 유공자 표창을 받은 마화텅 텐센트 회장(왼쪽)과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 [EPA=연합뉴스]

지난 2018년 중국 개혁개방정책 40주년 경축 행사가 열려 유공자 표창을 받은 마화텅 텐센트 회장(왼쪽)과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 [EPA=연합뉴스]

중국 민간 기업 경영자가 공포로 받아들이는 단어다. 한자를 풀이하면 국유기업은 전진하고 민간기업은 후퇴한다는 뜻이다. 현재 그렇다는 게 아니다. 앞으로 그래야 한다는 다분히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정확히 풀이하면 “그동안 민간기업 수고했다. 앞으론 국영기업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다. 국가의 계획적 통제를 강조하는 체제 특성상 중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은 당연히 국유기업 몫이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민간기업 위상이 달라졌다. 2000년대 들어 민간기업도 고용 창출과 혁신에서 큰 역할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국유경제와 민간경제 간 논란은 이후 중국에서 뜨거운 주제가 됐다.

최근 국진민퇴 논란이 다시 불고 있다.

지난 8월 바오우 철강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연합뉴스]

지난 8월 바오우 철강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연합뉴스]

바람을 일으키는 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일 ‘중국의 시진핑, 민간영역 통제 강화 중’ 이란 제목의 기사를 선보였다. WSJ는 “시 주석이 최근 (국유경제)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중국에서) 시장기반 개혁진영은 거의 사라졌다”고 전했다.

WSJ는 또 “최근 중국 정부는 민간 기업에 더 많은 공산당 간부를 배치하고, 정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업계획을 바꾸라고 직접 요구하고 있다”며 “나아가 일부 문제가 제기된 민간 기업의 지분을 국영기업이 흡수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시진핑이 국유 경제를 강조한 건 오래됐다. 2013년 11월 공산당 18기 3중전회에서 채택된 ‘전면적 개혁 심화의 중대 문제에 대한 결정’을 보자. 여기선 ‘국유경제의 주도적인 역할’을 발휘시키고 국유경제의 활력·통제 능력·영향력을 끊임없이 증강한다”며 ‘국유경제의 주도적인 역할’을 명시했다.

중국 민간기업의 투자 규모 변화.[WSJ 캡처]

중국 민간기업의 투자 규모 변화.[WSJ 캡처]

그래도 뜻대로 할 수 없었다. 민간기업은 많이 컸다. 특히 2010년대 이후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대변되는 중국 인터넷 기업의 맹활약은 중국 경제에 새 활력소였다. 민간 기업은 현재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60%, 고용의 80%를 담당한다. 상장기업 열에서 여섯은 민간기업이다.

지난 11월 중국 장쑤성 난퉁시에 있는 청나라 사업가 장젠의 박물관을 찾은 시진핑 주석. [신화=연합뉴스]

지난 11월 중국 장쑤성 난퉁시에 있는 청나라 사업가 장젠의 박물관을 찾은 시진핑 주석. [신화=연합뉴스]

그럼에도 시 주석은 국유기업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월 자신이 수장인 공산당 중앙전면개혁심화위원회에서 “국유기업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중요한 물질적, 정치적 기반이자 당의 통치와 국가 부흥을 위한 핵심축과 힘”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코로나19는 시진핑의 국유경제 강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코로나 충격으로 민간기업은 휘청였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 경제의 대외 수입 환경도 악화했다. 이런 혼란의 해법이 ‘국유경제’라는 게 지금 중국 지도부 생각이다. 국유기업 강화로 미국의 위협을 피해 ‘자립경제’를 모색해야 한다는 거다.

늘어나는 중국 국유기업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WSJ 캡처]

늘어나는 중국 국유기업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WSJ 캡처]

여기에 국유기업이 민간기업 지분을 사들이며 코로나19 여파에서 ‘구세주’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WSJ는 “코로나19로 닥친 불확실성으로 국가 계획경제가 복잡한 대내외 경제 상황 대처에 더 낫다는 게 중국 정부 주류 의견”이라고 전한다.

하지만 속내는 조금 다른 것 같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민간 기업가는 못 미덥고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심화해 있고, 이러한 생각이 중국 정부의 국유경제 강공 드라이브에 큰 영향을 미쳤다(WSJ)는 거다. 지난 11월 알리바바 그룹 자회사 앤트그룹의 중국 증시 상장 무한연기(?)는 민간 기업가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신을 보여준 사례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중국 금융시장에 대한 비판 발언 직후 시 주석이 상장 연기를 지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여기에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당의 영도하에 경제가 움직여야 한다는 시진핑의 국가 자본주의는 국유 기업의 기세를 올려주고 있다. 9월 당 중앙위원회는 ‘신시대 민영경제의 통일전선 강화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고, 시 주석은 민영기업가들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통일전선’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덩샤오핑 표현을 빌리자.  

바오우 철강. [WSJ 캡처]

바오우 철강. [WSJ 캡처]

국영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쥐(?)를 잘 잡으면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국유기업의 경영 효율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국유기업은 총 1조5000억위안(약 257조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수익률은 0.7%에 불과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 최대 철강기업 바오우(寶武) 철강은 지난해 상장이익이 전년보다 42%나 줄었는데도 기업 내 공산당 위원회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가난 해소는 시 주석이 내세우는 주요한 정치 목표 중 하나다. 기업 생존보다 이게 더 중요한 것이다.

중국통신건설(CCCC) 회사 직원들의 모습. 이 회사 역시 지난해 중국의 오수처리 전문업체 비수이위안(碧水源)을 인수하는 등 민간 기업 인수에 나서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통신건설(CCCC) 회사 직원들의 모습. 이 회사 역시 지난해 중국의 오수처리 전문업체 비수이위안(碧水源)을 인수하는 등 민간 기업 인수에 나서고 있다.[AFP=연합뉴스]

량중탕 상하이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 정부는 2013년 내놓은 청사진에서 제시한 것처럼 국유기업의 진정한 개혁은 시장 지향적이어야 한다”며 “하지만 미·중 무역 전쟁과코로나19 여파로 방향이 반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산당의 지도와 국유경제의 우위가 중요하다는 시진핑의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미국과의 한판 대결을 승리로 이끌 신의 한 수가 될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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