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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없애라" 시진핑 말발, 중국에서 안 먹히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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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노력을 전 세계에 알리자."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말이다. 이날 베이징에선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단연구가 개최됐다. 시 주석은 여기서 “지적재산권 보호는 혁신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지적재산권 보호를 통해) 중국이 ‘문명 대국’이자 ‘책임 대국’이라는 걸 보여 주자”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왜 지적재산권 보호를 주문했을까.

미국 때문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짝퉁 국가. 중국의 오명(汚名)이다. ‘기술 무단 탈취 국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공격할 때 쓴 단골 소재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포린어페이스 홈페이지 캡처]

지난 4월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포린어페이스 홈페이지 캡처]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4월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쓴 글에서 “만일 중국이 자신의 길을 간다면, 그건 미국 정부와 기업의 기술·지적재산권을 계속 강탈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적재산권이 바이든 행정부 중국 정책의 중심”(미 시사주간지 디플로맷)이라 평가하는 이유다. 시 주석의 발언도 바이든을 의식했다고 봐야 한다.

지난 1월 미국 백악관에서 1단계 미중무역 합의 서명 당시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미국 백악관에서 1단계 미중무역 합의 서명 당시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가이드라인은 이미 나와 있다. 지난 1월 서명한 1단계 미·중 무역합의다. 합의안엔 지적재산권(Intelectual Property), 즉 IP 보호를 위한 중국의 의무사항이 담겼다. 특허와 상표권 등 IP 보호를 위한 법 강화, 외국 기업에 기술이전 강요 금지 등이다. 미국이 금지한 기술이면, 중국은 이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투자를 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중국은 약속을 이행할까.

"에이, 중국 최고 지도자가 IP 보호 직접 주문했는데..."

[EPA=연합뉴스]

[EPA=연합뉴스]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미국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디플로맷은 중국에서 IP 보호는 당장 힘들다고 봤다. 중국 특유의 체제와 정치구조 때문이다. 디플로맷의 판단 근거를 소개한다.

1. IP 관련 전문가 부족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지적재산권 문제는 복잡하다. 무 자르듯 간단히 판단할 수 없다. 세세하게 조항을 따져야 한다. 미국에서 IP 분야 법률 전문가가 되려면 많은 지식과 실전 경험이 있어야 한다. 중국엔 이런 전문가가 많지 않다. 그런데 땅은 미국보다 넓다. 중국의 향진(鄕鎭)급 말단 행정구역만 약 4만 2000개다.

2. 지방 특허 사무소, 독립성 없어

[신화망 캡처]

[신화망 캡처]

한국의 특허청 격인 중국의 지식재산권국(CINPA)은 지역 사무소가 있다. 하지만 이들 사무소는 베이징의 CINPA 본부보다 지방 정부 눈치를 본다. 디플로맷은 ”중국의 지방에선 상급 부서보다 지방 정부의 리더십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지역 특허사무소 역시 지방 정부 지도자 의중을 더 신경 쓴다”고 분석한다.

3. 지방 간부 “IP 보호, 매력 없다.”

[신화망 캡처]

[신화망 캡처]

이런 지방정부 지도자. 즉, 시(市)나 성(省)의 성장이나 당서기는 통치 실적으로 능력을 평가받는다. 지역별 무한 경쟁 체제다. 중앙 정부, 공산당이 중시하는 정책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럼 시 주석의 강조한 IP 보호, 중요하지 않을까. 디플로맷 생각은 다르다. 지방 지도자가 IP 보호에 뛰어들 이유가 별로 없다는 거다. 디플로맷은 “지방 지도자는 숫자로 명확하게 측정이 되고 분류도 가능한 이른바 ‘하드 타깃’ 목표에 집착한다”고 분석한다. 그래야 중앙 정부에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다.

당이 내건 목표여도 측정이 애매한 ‘소프트 타깃’은 매력이 없다. IP 보호 같은 ‘표나지 않는 실적’보단 경제성장률 수치를 올리는 게 ‘훨씬’ 나은 거다. 상하이 개발개혁위원회 관계자는 “IP 보호를 강화하다 만일 지역 기업이 망가져 지역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어쩔 건가”라고 말했다.

4. 미국 기준대로 IP 강화? 中 산업 위기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이유다. 중국은 아직 첨단 핵심기술에서 해외에 의존한다. 그렇기에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화웨이가 휘청였다. 만일 미국이 말하는 원칙대로 중국 기업에 IP 보호를 요구한다? 중국 산업의 기술발전 속도는 현저히 느려질 것이다. 이러면 2035년 첨단 기술 70% 자립이란 공산당의 목표 달성을 위협받을 수 있다. 상하이 푸둥 지역에서 특허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중국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기술 초보다. 미국 수준의 IP 관련 법 집행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시진핑 주석의 IP 보호 천명. 다른 생각으로 한 말로 봐야 한다.

1일 연설에서 그가 한 또 다른 말을 보자.

"지적재산권 보호는 국가 안보와 맞물려 있다. 안보 관련 지적재산권의 대외 양도를 법에 따라 통제해야 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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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것’ 보다 ‘중국 것’에 대한 IP 보호에 방점이 있다는 말이다. 왕펑 인민대학 교수는 글로벌타임스에 “이번 지식재산권 강화 논의는 1일 시행된 수출관리법의 연장선”이라며 “수출관리법은 지식재산권 등 무형의 자산까지 보호한다. 틱톡이 외국에 인수되거나 합작회사가 되면 틱톡의 방대한 알고리즘 데이터가 유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관리법은 중국이 수출하는 기술·원자재·상품을 경제 보복 도구로 쓸 수 있게 하는 법이다. 미국에 중국산 희토류 수입을 제한할 수 있어 '희토류법'으로 불린다.

바이든과 무역협상을 앞둔 시진핑이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제재로 틱톡을 미국에 고스란히 뺏길뻔한 중국이다. 이번 시 주석의 발언, IP 보호를 내세워 미국과 국제사회에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한 시도다. 아울러 향후 미국의 공격으로 ‘제2의 틱톡 사태’를 겪지 않기 위한 법적·정치적 근거를 공고히 하는 행위다. IP 보호를 명분으로, 수출관리법을 무기로 삼아 미국에 대항하려는 중국에 맞서 미국은 어떻게 움직일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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