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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물약 먹기 힘들어 대장 내시경검사 꺼리지 않게 알약 개발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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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파이어니어 인터뷰 - 남봉길 한국팜비오 회장

대장암은 예방 가능한 암이다. 물론 대장 내시경검사를 잘 받았을 때의 얘기다. 구불구불하고 길쭉한 장 점막 표면을 샅샅이 살펴보려면 장을 깨끗하게 비워야 한다. 그런데 장을 비우는 과정이 워낙 불편하다 보니 대장 내시경검사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 한국팜비오 남봉길 회장은 “아무리 좋은 대장 내시경검사라도 이를 기피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먹기 편한 알약형 장 정결제 개발에 집중한 배경이다. 보다 편안한 대장 내시경검사 준비로 대장암 예방에도 기여한다.

"위에서 잘 녹는지 실험 1000여 회 #장내 거품 없애는 성분 함께 넣어 #다국적 제약회사와 기술 수출 논의"

대장 내시경검사는 철저한 장 세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변·음식 찌꺼기 등으로 장 세척이 불량하면 관찰하지 못한 대장 점막의 표면이 늘어난다. 이는 대장 내시경검사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남봉길 회장은 “장 세척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나도 장 비우는 물약을 모두 마시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면서 “대장 내시경검사를 받으면서 어렵더라도 물약 특유의 맛, 거북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도록 알약으로 약의 형태를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롭게 진화한 장 세척 방식인 알약형 장 정결제 ‘오라팡’이 탄생한 계기다. 한국팜비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장 세척 효과와 안전성을 인정받은 액상형 장 정결제 성분인 OSS(Oral Sulfate Solution·경구용 황산염 액제)를 알약으로 개량했다. 세계 최초의 OSS 알약형 대장 내시경 장 정결제다.

대장 내시경 검사용 물약을 알약으로 바꾸는 것은 예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지난해 출시한 오라팡은 알약으로 만들 원료 선정부터 제품 출시까지 4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남 회장은 “가루 형태인 원료를 뭉친다고 모두 알약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장 등 소화기관을 그대로 통과하는 물약과 달리 알약은 위에서 유효 성분이 일정하게 녹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알약은 얼마나 단단하게 뭉쳐졌는지에 따라 약효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알약을 너무 단단하게 만들면 위에서 충분히 녹지 않아 장 세척 효과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덜 단단하게 제조하면 알약이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 부서져 적정 용량을 복용하기 어렵다. 남 회장은 “알약이 위에서 얼마나 잘 녹는지를 검증하는 실험만 1000번 이상 반복했다”고 말했다.

남봉길 한국팜비오 회장은 “먹기 쉬운 알약형 장 정결제로 대장 내시경검사 정확도를 높여 대장암 예방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성욱 객원기자

남봉길 한국팜비오 회장은 “먹기 쉬운 알약형 장 정결제로 대장 내시경검사 정확도를 높여 대장암 예방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성욱 객원기자

먹기 편한 약 개발에 대한 의지가 강한데.
“대장 내시경 검사용 물약은 워낙 먹기 어려운 약으로 유명하다. 복용량을 줄인 물약도 나왔지만 여전히 먹기 어렵다는 불만이 많았다. 아무리 장 세척 효과가 좋은 약이더라도 약을 먹지 못한다면 불필요하다. 본래 장 정결제로 쓰이는 약의 원료 자체가 맛·냄새가 역하다. 알약으로 만들면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연구에 착수했으며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복약 편의성을 높였을 때 기대 효과는.
“약을 잘 먹고 장을 잘 비워 내니 장 세척 상태가 우수하다. 궁극적으로 대장 내시경검사의 정확도를 끌어올려 주는 효과도 있다. 실제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서 알약형 장 정결제로 장을 비워 냈더니 끝까지 복용한 사람의 비율이 95%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상대적으로 물약보다 알약을 먹기 편하게 여긴 것이다. 약을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먹기 편할까 고민한 결과다.”
거품을 제거하는 시메티콘 성분을 추가한 것이 호평을 받았다.
“오라팡만의 특징이다. 대장 내시경검사를 받을 땐 장 점막 표면을 확실하게 관찰하기 위해 누구나 장내 거품을 없애는 약을 별도로 먹어야 한다. 지난해 유럽 대장 내시경 가이드라인에서도 강조된 최신 트렌드다. 대장 내시경검사를 받는 사람이 병원에서 처방받은 장 정결제와 거품제거제를 직접 섞어 복용한다. 그렇다 보니 약을 늦게 먹거나 아예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약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어차피 먹어야 할 약이라면 장을 세척하는 약에 섞으면 상호 작용 없이 대장 내시경검사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임상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본다. 장내 거품을 확실하게 제거하니 대장 내시경검사를 할 때 별도의 처치 없이 장 점막 관찰에만 집중할 수 있다.”
대장 내시경검사 준비 패러다임을 바꿨는데.
“우수한 장 세척 효과, 높은 안전성, 쉬운 약 복용 등을 모두 만족한 알약형 장 정결제는 한국에서 개발한 오라팡이 최초다. 다른 제약사에서 인산나트륨 성분을 알약으로 변경해 상품화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약물 안전성 등에 한계가 존재했고, 결국 전해질 불균형 등 문제로 미 FDA에서 퇴출됐다. 오라팡을 개발할 때도 안전성에 신경 썼다. 오라팡 복용 전, 내시경 당일, 내시경 일주일 후 검사에서 체내 전해질 수치를 측정해 보니 정상 범위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엔 새로운 경쟁자도 등장했다. 미국에서 오라팡과 같은 OSS 성분으로 알약형 장 정결제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어떤 원료를 조합했는지 살펴보니 거품 제거 효과라든가 안전성은 오라팡이 더 우수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제품 경쟁력은 글로벌 진출로 이어진다. 남 회장은 “대장 내시경 장 정결제 분야에서 강점을 지닌 다국적 제약사인 페링에 오라팡 기술 수출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팜비오의 제형 변경 기술력을 인정한 것이다. 남 회장은 “대장 내시경검사의 질을 개선한 알약형 장 정결제로 대장암 예방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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