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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집서 TV보다 "김일성 잘생겼다"…실형 40년만에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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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상. 노동신문=뉴스1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상. 노동신문=뉴스1

1970년대 당시 북한의 선전방송을 시청하고 “김일성 잘생겼다”고 말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90대 여성이 약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이관용)는 최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95)의 재심에서 기존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1978년 6월 3일 A씨는 지인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중 북한의 선전방송 ‘김일성이 살던 초가집’, ‘평양 국립극장에서 상영되는 서커스’, ‘북괴군의 행렬’ 등을 약 50분 동안 시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다음날 다른 지인에게 “어제 돈 주고도 못 볼 것을 봤다”며 “김일성은 늙은 줄 알았더니 잘 먹어서 그런지 몸이 뚱뚱하게 살이 찌고 젊어서 40대 같이 보이는데 잘생겼더라”고 말했다.

또 “이북에는 고층빌딩이 여기저기 있고, 도로도 잘되어 있더라”, “이북에는 8시간 노동만 하면 먹고사는 것은 걱정 안 하더라” 등도 언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날 밤 9시 A씨는 시누이의 남편 C씨에게 자신의 집 TV에도 북한 방송이 나오는지 보자고 말을 하며, 북한의 선전활동에 동조한 혐의도 있다.

같은 해 9월 검찰은 A씨가 주변 사람에게 함께 선전방송을 보자고 권유한 혐의를 더해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자격정지 10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보다 높은 징역 10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고, 1979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A씨는 40여 년이 지난 5월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9월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주변인의 진술에 따르면 A씨가 평소 북한에 대해 언급한 바 없고, 동네 사람들이 저녁 시간에 모여 TV 채널을 돌려보다가 우연히 북한 방송이 나온 뒤 공소사실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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