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딸과 세상 모든 딸을 위한 판결 해달라” 동료 성폭행 혐의 서울시 직원에 징역 8년 구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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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가 지난 10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동료 직원 성폭행 혐의 관련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가 지난 10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동료 직원 성폭행 혐의 관련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어린 두 자녀의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최대한 선처해주길 바랍니다” (피고인 변호인)
“피고인도 딸이 있는 아버지입니다. 딸의 앞날을 위한 감형이 아니라 딸과 저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딸의 앞날을 위해 국민 법감정에 맞는 판결을 간곡하게 바랍니다” (피해자 변호인)

서울시 비서실에서 일하던 직원 정모씨가 지난 4·15 총선 전날 회식 후 동료 직원을 준강간했다는 혐의로 진행된 재판. 재판을 마무리하는 결심공판에서 피고인 정씨와 피해자는 정반대의 이유로 재판부에 합당한 판결을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재판장 조성필) 심리로 10일 열린 이 날 재판에는 피고인측이 신청한 증인 신문과 양측의 최후 변론을 듣는 절차가 진행됐다. 검사는 “정씨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재판 내내 변명과 핑계를 거듭했다”고 정씨에 대한 중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검사는 “피고인에 대해 징역 8년과 신상정보 공개고지명령, 취업제한명령 등을 함께 해달라”고 구형했다.

소문이 2차 피해로…증거 CCTV 비공개 재생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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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법정에서는 증거조사를 위해 사건 당일 모텔 CCTV를 비공개로 재생했다.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과 피고인만 법정에 남아 증거로 제출된 영상을 열람할 수 있었다. 영상 재생이 끝난 뒤 다시 공개 재판이 시작됐고, 증거 내용을 재판 기록에 남기기 위해 재판장은 영상 속 사실관계를 일부 읊었다. 영상에는 정씨가 정신이 없는 피해자를 이끌고 모텔로 들어가고, 방문 앞 복도에 누워있는 피해자를 방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 담겼다고 한다.

앞서 피해자는 직장 내 허위 소문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겪었음을 토로해왔다. 시청 동료 및 주변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유발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취지다. 이날 피해자가 재판부에 낸 탄원서 내용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다. 피해자 변호인은 “피고인이 성폭력에 대해 주변에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며 “피해자는 동료들로부터 ‘피고인이 맞고소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피해자가 꼬신 것처럼 했다’는 말도 들었으며, 시청 게시판에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매도하는 글도 있었다”고 했다. 이날 피고인측이 신청한 증인으로 출석한 정씨의 상사도 “피고인에게 사건 개요를 금요일에 보고받고 월요일에 출근해 상부에 보고하려 했는데 인사과에서 ‘지라시’를 통해 먼저 알고 전화가 왔다”고 증언했다. 사건 직후 피해자를 둘러싼 소문이 빠르게 퍼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피해자와 피고인의 엇갈린 진술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이 가장 엇갈리는 부분은 모텔 안에서 상황이다. 피해자측은 사건 직후 신고에서부터 법정까지 준강간 피해를 주장했다. 하지만 피고인측은 “신체 접촉은 있었지만,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동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에는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사실관계는 여전히 다툰다고 했다. 피고인 변호사는 “회식 이후 피해자를 데려다주기 위해 택시를 탔지만 집을 정확히 찾을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눈앞에 보이는 모텔을 가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진술 외에는 모텔 안에서의 일을 입증할 직접 증거가 없다”며 “입증이 어려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 최종 변론을 하려 일어선 정씨는 “모텔로 간 것은 저의 엄청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그 이후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싶었는데 2차 피해 때문에 연락하지 말라 해 연락을 못 했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 “가족과 지인에게 실망감을 안겨줘 죄송하다”라고도 했다.

피해자 변호인은 “피해자의 최초 진술 조사, 상담 치료 초진 기록의 진술과 관련된 정황 증거를 볼 때 (준강간 피해 사실은) 넉넉히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와 동일인인 이 사건 피해자는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서 “정 씨로부터 가해 사실이 없었다면 박 전 시장 고소 이후 일어난 심각한 2차 가해에 대해서도 더 떳떳했을 텐데, 더 많은 추측과 비난 때문에 더욱 괴롭다”고 호소했다.

양측의 의견을 모두 들은 재판부는 내년 1월 14일 오전 10시 정 씨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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