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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35화. 힐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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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만드는 기적

'인디아나 존스' 영화 속에서 인디가 기적의 성배를 찾아낸 것은 모두 아버지를 구하고 싶은 마음 덕분이다.

'인디아나 존스' 영화 속에서 인디가 기적의 성배를 찾아낸 것은 모두 아버지를 구하고 싶은 마음 덕분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은 기적을 일으킨다는 예수의 잔, 성배를 둘러싼 모험을 그린 작품입니다. 나치와 맞서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인디)와 그 아버지 헨리 존스 박사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죠. 사이가 나빴던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힘을 합치지만, 물밀듯 몰려오는 적들을 당해 낼 수가 없어 잡히고 맙니다. 악당은 아버지를 총으로 쏘고, ‘성배만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얘기에 인디는 온갖 함정이 가득한 유적으로 뛰어듭니다. 과연 그는 성배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배의 기적은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까요.

오랜 옛날부터 병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은 때때로 기적으로 불려왔습니다. 세계 신화에는 아폴로처럼 치유를 담당하는 신이 등장하며, 고대신앙의 샤먼은 치유술로 유명하죠. 『신약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기적들이 나오는데, 그중 대부분이 병자나 불구를 치료하고, 죽은 이를 깨워내는 치유죠. 하지만 판타지 속에서 치유는 기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이가 사용하는 기술, 나아가 모험에서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죠.

비교적 약한 몬스터 슬라임에서부터 강대한 마왕에 이르기까지 용사의 모험에서는 무수한 적이 나타나 용사를 해칩니다. 게임 속에서 몬스터의 공격은 HP(히트 포인트·Hit Point나 헬스 포인트·Health Point)라고 부르는 수치가 줄어드는 것에 그치지만, 실제론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죠. 슬라임의 공격으로 발생한 피해는 약간 긁힌 정도겠지만, 칼을 든 적이라면 팔다리가 잘릴지도 모릅니다. 악당 마법사의 강력한 화염 마법이라면 전신 화상 정도로 그치는 게 차라리 다행이겠죠. 용사를 재기불능에 빠뜨릴 수도 있는 피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 판타지의 치유술 ‘힐링(Healing)’입니다.

흔히 회복 마법이라고 번역하는 힐링은 판타지 게임의 가장 기초적인 마법입니다. ‘약초’라고 부르는(체력이라 부르는 HP를 약간 회복하는) 궁극의 식량이나 포션(Potion)이란 이름의 절대적인 치료약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용사라면 역시 힐링을 사용하는 게 기본. 마법 포인트(MP)는 줄지만, 모든 상처가 일순에 사라지고 완벽한 상태로 다음 전투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화염 마법으로 입은 화상도, 냉각 마법에 따른 동상도, 잘려나간 팔다리도 당연히 원상 복귀. 그야말로 기적 그 자체입니다. 특히 판타지 영화·애니메이션에서 잘려나간 팔이 원래대로 생겨나는 장면은 놀랍기 이를 데 없죠.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상황이긴 합니다. 힐링 한 번에 잘려나간 팔이 새로 생겨난다면, 원래 있던 팔은 어떻게 될까요. 싸울 때마다 용사의 팔이 잘려서 힐링을 쓰면 세상에는 용사의 팔이 수십, 수백, 수천 개가 떨어져 있을까요? 이 팔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까요? 힐링으로 잘린 팔이 생겨난다면, 잘린 팔에 힐링을 걸면 내 몸이 생겨나고 수백 명의 용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그야말로 온갖 의문과 수수께끼가 뒤를 잇고 끝없이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릅니다.

이처럼 힐링은 이해하기 힘든 어떤 개념이지만, 용사의 모험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용사의 모험이 힐링 없이 헤쳐 나갈 수 없는 역경으로 가득하기 때문이죠. 상처 외에도 저주나 석화, 최면 같은 역경이 있으며, 이에 맞는 해결책이 등장합니다. 모두 사람들이 바랐기 때문이죠. 신화나 전설에서 치유가 등장하는 상황도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치유는 소중한 사람을 구하고 싶은 누군가의 마음에 반응해 작용하죠. 그것이 샤먼에 의한 것이건, 마법사나 신에 의한 것이건, 그러한 기적을 발동시키는 원동력은 바로 ‘소중한 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인 것이죠. ‘인디아나 존스 3’에서 인디는 수많은 성배를 발견합니다. “참 성배는 생명을 주지만, 거짓 성배는 앗아간다.” 성배를 지키던 기사는 경고하고, 악당은 잘못된 성배를 골라서 죽어버립니다. 진짜 성배만이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인디는 스스로 시험하죠. 고고학 지식이 도움된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함정을 돌파하고 성배를 찾은 것은 모두 아버지를 구하고 싶다는 일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찾아낸 성배는 아버지를 치유합니다.

하지만, 성배가 치유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둘의 마음이죠. 서로를 싫어하는 마음을 치유한 것은 성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를 구하고자 하는 아들의, 그리고 아들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죠. 힐링은 판타지의 만능 기술인 회복 마법을 부르는 이름이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회복시킨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요즘처럼 힘겨운 시기, 사람들은 힐링을 위해 많은 방법을 시도하고 있죠. 힐링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신화로부터 전설을 거쳐 판타지에 이르는 힐링의 존재가 모두 ‘남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음을 떠올리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내게 소중한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바로 치유라는 기적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니까요.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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