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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내가 죽던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박지완 감독의 ‘내가 죽던 날’은 세진(노정의)이라는 소녀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지만,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과정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경유하는 여러 감정에 대한 영화다. 소녀는 왜, 그리고 어떻게, 혹시 누구에 의하여, 또한 무엇을 위하여, 언제 어디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여기서 형사인 현수(김혜수)는 육하원칙에 입각해 소녀를 바라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세진의 ‘죽음’만을 이야기할 때, 현수는 그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한다. 그는 남겨진 단서들을 통해 세진에게 동일시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 아이의 진실에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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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영화는 순천댁(이정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 때문에 외딴 섬으로 온 세진을 딸처럼 돌보는 사람은 순천댁이다. 말을 못하는 순천댁은, 죽음을 생각하는 세진을 살리기 위해 마음을 쓴다.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목소리를 짜내 이야기한다. “나가서…. 우리 몫까지…. 살아. 아무도…. 안 구해줘. 니가… 너를 구해야지. 인생이…. 니 생각보다…. 훨씬 길어.” 이 말을 마치고 오열하는 배우 이정은의 얼굴은 2020년 한국영화를 뒤돌아보며 ‘올해의 표정’으로 뽑을 만한 울림이 있다. 그리고 이 대사는 좌절하고 절망한 젊은 세대들에게 어른 세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말이기도 하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