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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전제가 사라지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얼마 전 조찬에서 만난 교수님 한 분은 비대면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면서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1학기 원격으로 개강을 하고 힘들게 수업을 진행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교수님이 2학기 때는 예전처럼 대면수업으로 진행하려 수요조사를 해보니 예상치도 않게 대부분 학생들이 비대면으로 해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으로 온라인 강의를 해보신 교수님과는 달리 대학입시를 치르기 전부터 워낙 인강에 익숙했던 학생들에겐 집에서 누워서도 들을 수 있는 비대면 수업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말씀입니다.

코로나로 시작된 비대면 강의 #학생들은 이미 비대면수업 익숙 #전제, 수동적 마음이 빚은 관행

그렇습니다. 부지런히 채비를 마치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집을 나서던 것이 이제는 선잠을 간신히 깨며 노트북의 파워를 누르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수업 중에도 손들고 질문하는 것보다 채팅창에 의견을 적는 것으로,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시보기로 되풀이하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아마도 학생들은 등록금을 낮춰달라 이야기할 것입니다. 학교가 자랑하는 멋진 건물을 이용하지도, 그 안의 서비스를 원하지도 않기에 순전히 강의에 해당하는 비용은 적합할지 모르지만 과외의 비용에 대해서라면 지불할 의향이 없다고 할 터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원격이라면 굳이 한국의 학교에 수강신청을 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 않을까요? 특정 분야에 더 우수한 외국의 학교에 등록하여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이렇듯 물리적으로 이동하여야 한다는 전제가 사라지는 순간, 방법과 효율이 다른 방향으로 극대화하기 시작합니다.

빅데이터 12/4

빅데이터 12/4

해외 출장에 대해서도 새로운 방식의 적응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인공지능 전문가는 바이러스 이후에 오히려 해외와의 미팅이 잦아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외국의 연구진이나 협력사들과 협의하며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 작년만 하더라도 거의 매달 몇 차례나 출장을 갔었다고 합니다. 시차와 이동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1주일에 한 나라를 다녀오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는데, 이제는 한 주에 다섯 군데 미팅도 가능하다며 이전보다 업무가 빨라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만나 회의를 하며 논의하는 것을 온라인으로 하더라도 하등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달력이 마지막 장만 남게 되자 기업들은 한 해 동안의 살림을 정리하면서 출장의 경비가 엄청나게 절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미룬 것일 수도 있지만, 예상외로 물리적 이동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내년도 계획에 줄어든 예산을 반영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국가간 이동이 어려워진 위기의 상황이 외국과의 협력이 반드시 항공권과 호텔비를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셈이 된 것입니다.

원격교육 시스템이나 온라인 회의 시스템이 개발된 것은 벌써 20년이 지난 일임에도 그간 당연히 예전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들이 관성처럼 유지되다 보니 그 효용의 범주가 제한돼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며 카페 안에서 취식이 금지되자 그곳에서 공부를 하거나 이동하며 업무를 처리하는 분들에게서 머물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카페는 커피나 디저트를 파는 곳의 역할 뿐 아니라 디지털 노마드들에겐 도시 안의 오아시스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준 셈입니다. 반대로 이 현상은 우리 사회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적었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의 비용만으로 잠시 쉬고 글을 읽거나 쓸 수 있는 공간을 잠시 빌릴 수 있다는 것이 어찌보면 감사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넓은 땅에 비용 지불을 전제하지 않으면 잠시도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삭막한 도시를 만들었다는 비정함이 새삼 느껴집니다.

어쩌면 전제는 물리적으로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보다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묵시적·명시적 규칙에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아니하고 그저 따라 하며 수동적으로 살아온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요?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