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프리즘] 간염 보균자 편견 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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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도 등급이 있다. 전염력이 강한 대표적 전염병이 바로 독감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전파되기 때문이다.

독감 환자가 한번만 재채기를 해도 수억개의 바이러스 입자가 튀어나온다. 숨을 쉬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사무실의 동료나 교실의 급우에게 바로 옮겨진다.

독감 외에 홍역이나 감기도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 그러나 독감이나 감기에 걸리거나 피부발진 등 홍역을 의심케 하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다른 사람에게 옮길 것을 두려워해 결근하거나 결석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견딜 만하면 콜록거리면서도 일을 계속한다.

다음으로 강한 전염력을 지닌 것이 신체 접촉을 통해 옮겨지는 전염병이다. 피부끼리 직접 접촉하거나 음식물이나 손을 통해 입으로 바이러스나 세균이 들어오는 경우다.

이질이나 콜레라.눈병.뇌수막염 등 대부분의 전염병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질의 경우 세균이 단 10마리만 입으로 들어와도 병을 일으킨다.

그러나 자녀가 배탈이나 설사를 하거나 눈병이 생겼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전염될 것을 우려해 학교를 쉬게 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만한 경우를 갖고 개근을 놓칠 순 없다며 출석을 다그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팀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간염 보균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보균자의 취업 실패율은 38%로, 비(非)보균자의 12%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균자들의 21%가 채용 과정에서 '차별받았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비보균자들의 5%보다 3배나 높았다. 취업에서 간염 보균자들이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간염 바이러스는 공기 전파를 통해서도, 신체접촉을 통해서도 전염되지 않는다. 에이즈처럼 오직 주사기나 성기의 점막이 헐 정도로 격렬한 성교 등을 통해 보균자의 혈액이 섞일 때만 전염된다.

흔히 알고 있듯 국을 같이 떠먹거나 술잔을 돌린다고 전염되는 것은 아니다. 보균자가 만진 물건을 만진다고 전염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보균자는 환자와 다르다. 보균자는 단지 혈액 속에 바이러스가 있을 뿐 간염 증상은 없으므로 환자가 아니며 대부분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

혈액 속에 B형과 C형 등 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보균자는 5백만여명에 달한다.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는 간염 보균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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