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 지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판사 문건은 죄 안된다’ 보고서 #“박 담당관 지시로 삭제했다” 진술 #박은정, 감찰배제 따진 상관 류혁에 #“날 망신주는 거냐” 되레 언성 높여
“지시하셨습니다.”
1일 열린 법무부 감찰위원회에서 고성이 오갔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에 파견돼 윤석열 검찰총장 감찰 업무를 맡았던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와 그의 상관이었던 박은정 감찰담당관 사이에서다.
이 검사는 “이른바 ‘판사 사찰’ 사안을 윤 총장의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적은 보고서가 삭제됐다”고 ‘양심선언’했던 인물. 이와 관련한 감찰위원들의 질문에 박 담당관이 “삭제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밝히자 이 검사가 그의 면전에서 “삭제 지시를 했다”고 못 박은 것이다.
윤 총장에 대한 감찰 적정성 등을 따지기 위해 소집된 이날 감찰위원회는 감찰 담당 검사들 간 설전의 장이 됐다. 박 담당관을 감찰 검사들이 비판하고, 박 담당관이 이에 반박하는 구도였다.
감찰위원들은 먼저 윤 총장 감찰 및 직무배제 결정, 수사 의뢰 등 일련의 과정에서 박 담당관의 상관인 류혁 감찰관이 배제됐다는 의혹에 대해 질문했다. 류 감찰관은 “지난달 초 윤 총장 관련 진상을 조사해 보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이후 진행 상황은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추 장관 발표 몇 시간 전에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등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 담당관은 “장관이 보안 유지를 지시했기 때문에 규정 위반이 아니다”고 반박한 데 이어 류 감찰관을 향해 “날 망신 주는 겁니까. 사과하세요”라고 언성을 높였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뒤를 이은 것이 이 검사와 박 담당관 간의 보고서 삭제 논란이었다. 앞서 이 검사는 검찰 내부망을 통해 보고서 삭제 사실을 폭로했지만 누가 삭제의 주체인지를 명시하지 않았다. 이날 박 담당관이 삭제 지시를 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폭로한 건 박 담당관이 어떤 형태로든 보고서 삭제와 관련돼 있었을 가능성을 키운 것으로 해석된다.
“퇴직 후 국민에게 봉사할 방법을 찾겠다”는 윤 총장의 국정감사 발언이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징계 사유에 포함된 데 대해서도 설전이 벌어졌다. 박 담당관은 한 감찰 담당 검사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히자 “나는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한 참석자는 “사실상 대질 심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감찰위는 이날 3시간 이상 윤 총장에 대한 여섯 가지 징계 사유가 타당한지, 절차적 정당성이 지켜졌는지, 직무배제할 정도의 중대한 비위인지 등을 검토했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절차의 중대한 흠결로 인해 윤 총장의 징계 처분, 직무배제, 수사 의뢰는 부적절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윤 총장에게 징계 청구 이유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고, 소명 기회도 주지 않은 것을 주로 문제 삼았다. 특히 이날 참석한 7명의 감찰위원 중 3명은 “절차뿐 아니라 내용에도 결함이 있다”며 더 강경한 내용의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법무부는 “소명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적법 절차에 따라 감찰이 진행됐고, 그 결과 징계 혐의가 인정돼 징계 청구를 한 것”이라며 권고 불수용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감찰위는 자문기구라 법무부가 결론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검찰 내부에서는 감찰위 결정에 대해 “사필귀정”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류혁 감찰관 ‘패싱’을 두고는 “범죄 자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수도권의 한 검사장은 “법에 ‘감찰관에게 보고하라’고 돼 있는데도 추 장관이 그 법을 무시하고 단독 지시를 내린 것은 딱 떨어지는 직권남용죄”라고 말했다.
김수민·강광우·김민상 기자 kim.sumin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