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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절반 “백신 안 맞겠다”…WHO “기피하면 인류 위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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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호 03면

뿌리 깊은 백신 불신론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5월 미국에서 한 시민이 ‘노 백신(No Vaccine)’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5월 미국에서 한 시민이 ‘노 백신(No Vaccine)’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이 이르면 다음달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미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는 다음달 10일 화이자 등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긴급사용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당초 예상보다 빠른 진척에 일각에선 코로나19 사태 조기 종식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제기한다.

코로나 백신 반대로 집단면역 차질 우려 #독감 백신은 예방 효과 50% 미만 #우크라, 홍역 백신 맞고 아동 숨져 #각국·제약사들 패권 장악에 악용 #전문가 “접종 늘려야 코로나 종식”

하지만 백신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변수가 또 있다.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치센터는 지난 9월 미국 성인 남녀에게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면 맞을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그 결과 5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구의 70%가량이 면역력을 가지는 ‘집단면역’ 달성 구상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어 미 정부로서도 골칫거리다.

이들은 왜 백신 접종에 회의적일까. 사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모든 백신은 격렬한 접종 반대 운동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 중 하나로 백신 기피를 꼽았다. 백신 반대론자들은 백신 접종이 심하면 죽음에 이르는 각종 부작용을 유발해 오히려 더 위험하다며 안전성 우려를 제기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08년 홍역 백신을 접종한 어린이가 원인 불명으로 숨진 사실이 회자되면서 95%가량이던 백신 접종률이 2016년 31%로 떨어졌다. 핀란드에서는 2009년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 후 기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논란이 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반대론자들은 또 백신을 맞아도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례를 들며 무용론을 제기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감 백신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15년 발표한 독감 백신 유효성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05년부터 10년간 예방 효과가 평균 5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변이에 취약할 뿐더러 면역력이 약해진 고령층이나 기저질환자일수록 항체 생성률이 낮았다. 따라서 코로나19 백신이 나와도 예방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코로나19의 일부 재감염 사례가 확인돼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성문우 교수 연구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임상 감염병(Clinical Infectious Diseases)’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확진 후 회복한 국내 20대 여성이 4월 초에 다시 양성 판정을 받았다. ‘V형’에서 변이된 ‘G형’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받아 기존 바이러스 유형에 대한 항체가 생겨도, 변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독감처럼 반복적으로 감염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AFP=연합뉴스]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AFP=연합뉴스]

이와 더불어 반대론자들은 백신이 제약사나 각국 정부의 정치·경제적 이익 추구의 산물이라고도 주장한다. 제약사가 돈벌이를 위해 백신의 효능을 과대포장하면서 로비 활동과 여론몰이를 한다거나, 각국 정부가 국민 통제나 국제사회 패권 장악에 백신을 악용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이 또한 사례가 없진 않다. 2009년 WHO가 자문위원회 조언으로 독감 대유행을 선포해 세계 각국에서 백신 주문이 폭주했는데, 조언한 전문가 상당수가 주요 제약사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또 중국과 러시아가 코로나19 백신을 먼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냉전 시대에는 백신이 체제 선전의 도구 역할도 했다.

백신 반대 운동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두 얼굴의 백신』의 저자인 스튜어트 블룸에 따르면 천연두 백신 접종이 시작된 19세기에도 대중의 저항이 심상치 않았다. 그러다 20세기 초로 접어들면서 보건 서비스가 개선되고 많은 국가에서 양심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백신 접종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는 법을 제정하면서 백신 접종 반대 운동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백일해 백신 접종의 부작용 탓에 1950년대 이후 다시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전문가들은 백신 불신론을 떨쳐내고 접종률을 높여야 코로나19 사태의 진정한 종식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미 메릴랜드 의대의 웰버 첸 교수는 외신을 통해 “백신은 FDA 등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우수한 연구·개발 결과를 낸 경우에 한해 사용 허가가 난다”며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되면 안전성이나 효능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백신 접종 확대만이 세계적 집단면역 실현으로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다만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제약사와 각국 정부가 안전한 백신 개발과 생산·유통, 철저한 검증을 거친 승인 등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차제에 세계 보건·의약계의 자정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익명을 원한 서울의 한 대형병원 교수는 “글로벌 컨트롤타워인 WHO가 늑장 대처로 코로나19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며 “백신 반대 운동에 대한 비판에 앞서 그들이 왜 반대하는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건지 자아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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