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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갈등이 이혼 '불씨' 된다

중앙일보

입력

#1=결혼 1년차인 김모(32)씨. 그는 며칠 전 뻔질나게 회사로 전화를 해대는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일이 많고,윗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를 알만도 한데 '빨리 돌아와라''회식에 꼭 참석해야 하느냐'며 투정반 강요반 간섭을 하는 것이다.

급기야 김씨는 '너 같은 여자 처음 본다'며 아내를 성격이상자인 양 공격했고, 아내는 '그러면 뭐하러 결혼했어'라며 맞받아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2=결혼 3년차인 박모(33.여)씨는 '철없는 남편'생각만 하면 골이 지끈지끈 아프다. 이제 가정의 소중함을 알만도 한데 친구를 더 좋아하고, 대책 없이 신용카드를 긁어대 아내의 속을 끓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별 문제 없다'며 결혼 전 알던 여자친구들과 어울리는 데는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그녀는 아이 병치레로 심신이 피곤한 날, 새벽에야 귀가한 남편과 대판 싸우고 말았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인구 1천명당 2.8명으로 미국.영국에 이어 세계 3위. 하지만 요즘 정신과 문을 두드리는 젊은 부부들의 유형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황혼 부부들의 호소는 '억울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 가부장적 남편 밑에서 핍박받은 아내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 경향은 상호 이해부족이나 대화의 기술이 떨어져 조정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 이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다음은 부부클리닉-후의 김병후 원장이 제시한 신세대 부부의 갈등 다섯 가지 유형.

첫째는 생리적 변화에 대한 지식 부족. 아이를 낳은 후 여성에게는 생리적으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한다.

애정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이 물질은 누군가와 접촉하고, 함께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아이를 낳은 후 여성은 육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다. 누가 공격할 것 같은 원초적인 본능이다.

남편과 시간을 공유하고 밀착된 생활을 원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 문제는 남편이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일인데 아내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주장을 한다.

둘째는 시대 변화에 따른 성(性)역할 변모에 대한 이해 부족. 맞벌이 부부에서 많이 나타나는 유형으로 남성들의 잠재의식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부장적 가치관 때문에 발생한다. 가사 분담에 대해 아내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항상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서로 간의 성격 차이에 따른 갈등. 예컨대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남편과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한 아내의 경우, 남성은 남들에게 '사람 좋다'는 평을 듣지만 아내에겐 '최악의 남편'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해 상대방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강요한다. 결혼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불거지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배우자를 이해하지 못해 점차 분노에 휩싸인다.

넷째는 가정개념에 대한 성숙도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육아와 살림 등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반면 남성은 가장으로서 자리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위의 두 번째 사례에서 보듯 총각행세를 하며 친구를 더 좋아한다거나, 자신이 좋을 때만 아내에게 섹스를 요구하는 등 가정을 실체로서 받아들이는 데 남성은 둔감하다는 것. 이러한 갈등 구조를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백상신경정신과 박수룡 원장은 "부부갈등을 풀기 위해선 상대방의 부족한 점, 다른 점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고 주문한다. 그는 또 부부의 '감정 은행'에 많은 애정을 저축해 놓을 것도 권했다.

배우자에 관해 많이 알고,또 자신에 대해 많이 알려주도록 노력하라는 것. 함께 즐거워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틈틈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애정 마일리지(Mileage)'를 축적하는 길이다.

김병후 원장은 "요즘 젊은 부부들은 사소한 갈등을 조정하지 못해 이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담만으로도 잘 치료된다"며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이혼율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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