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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특집] 숨은 감염자 '양지' 나오게 유도를

중앙일보

입력

'12월 1일에는 붉은 리본을 다세요.' 붉은 리본은 유엔산하 '유엔 에이즈'가 에이즈 감염자들의 삶의 질 향상과 치료에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든 상징물.

유엔 에이즈는 올해 15회를 맞는 세계 에이즈의 날 슬로건으로 '에이즈와 더불어 살기(Live and Let Live)'를 내걸면서 감염자와 환자를 끌어안는 붉은 리본 달기를 촉구했다.

중앙일보와 한국 MSD, EMI 뮤직코리아는 인권 사각지대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의 삶을 조명하고, 사회의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에이즈, 공포에서 이해로(NO AIDS, MORE AID)'라는 주제로 특집을 꾸민다.

에이즈 환자 단기 요양시설인 쉼터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김모(41)씨. 그는 최근 자신이 죽은 뒤 시신을 연구용으로 내놓겠다고 유언했지만 그의 마지막 선행을 받아주는 병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환자를 해부한 수술도구를 모두 버려야 한다는 궁색한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다.

얼마 전 질병 악화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감염자 박모(34)씨. 보증인이 없어 입원도 못하는 상황에서 병원 식당을 이용하려다 제지당했다.

자신의 신원을 파악한 식당 측이 개인용 식기를 가져오라며 배식을 거부했던 것. 에이즈 감염자를 잘못된 편견으로 차별하는 사례들이다.

국내에서 밝혀진 에이즈 감염자 수는 9월 말 현재 1천8백88명.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발견되지 않은 환자 수는 발표된 통계의 4~10배까지 추산된다.

문제는 이전에는 외국여성 또는 동성애자로부터 감염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국내 이성 간 감염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것.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창우 사무국장은 "우리의 현재 상황이 외국에서 에이즈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의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경고한다.

국내 이성 감염의 증가와 성개방, 그리고 에이즈 감염자가 급증하는 중국.러시아.인도.동남아 등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가 그것이다. 모든 연령층과 직업군에서 골고루 감염자가 발생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에이즈 확산 예방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고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 연세대의대 감염내과 김준명 교수는 "감염자들이 사회의 냉대와 멸시를 받고 사회 속으로 숨는다면 결코 예방사업이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으면서 국민 계몽에 앞장 설 때 감염확산의 기회가 차단된다는 것.

우리 사회의 에이즈 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골은 깊다. 이들을 가장 서글프게 하는 것은 부도덕한 사람들로 취급한다는 사실.

김교수는 "고교 2학년 학생이 동정을 떼준다는 친구들에게 반강제로 떼밀려 매춘부와 접촉하고 에이즈에 걸렸다. 또 어떤 감염자는 교도소에서 성폭력을 당한 것이 원인이었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고 반문한다. 에이즈도 성병에 불과하며, 우리가 비감염자라는 것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에이즈에 대한 무지도 편견으로 작용한다. 혈액의 교환만 아니라면 별 문제가 없는데도 피부병처럼 접촉을 꺼리고, 식사를 같이 하는 것도 두려워한다. 감염경로가 명확하기 때문에 에이즈 감염자에게 직업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

감염자들의 또 다른 족쇄는 경제적인 어려움. 취업이 힘들어 생계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고가의 약값과 검사비를 자신이 떠안아야 한다.

쉼터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인 치료비와 검사비를 보조받고는 있지만 후불제이기 때문에 목돈이 없는 이들의 치료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만성질환자에게 적용하는 연간 보험 적용 3백65일 제한도 문제다.

1년 내내 에이즈 치료약을 먹고 있는 이들이 다른 합병증이 생기면 나머지 치료일수만큼은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

에이즈 예방과 관리를 위해 배정된 올 예산은 20억1천2백만원. 이를 에이즈예방협회와 에이즈퇴치연맹.구세군 등이 나눠쓰고 있다. 협회에서 운영하는 전국 네 곳의 쉼터 운영과 예방활동 및 환자관리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

이창우 국장은 "쉼터의 위치나 종사자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사회가 폐쇄적"이라며 "전국이 이들의 편안한 쉼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이들을 껴안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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