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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보다 여자 맘 잘 아는 ‘유미의 세포들’ 작가 “즐거운 오해”

중앙일보

입력

5년 7개월간의 연재를 마친 웹툰 ‘유미의 세포들’. 신순록과 김유미의 결혼식 장면. [사진 네이버웹툰]

5년 7개월간의 연재를 마친 웹툰 ‘유미의 세포들’. 신순록과 김유미의 결혼식 장면. [사진 네이버웹툰]

“오랜만에 돌리는 거라 뻑뻑할 거야. 모두 힘내!”

5년 7개월간 32억뷰 기록하며 연재 마쳐 #“누구나 행동과 마음 속 생각 다를 때 있어 #욕망 의인화한 세포들 이야기 공감한 듯” #드라마 제작 소식에 가상 캐스팅도 화제

2015년 4월 1일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 첫 회에 등장한 ‘이성 세포’의 대사다. 오랜만에 머리를 쓰고 있는 주인공 김유미를 위해 함께 맷돌을 돌려달라고 머릿속 다른 세포들에게 지원 사격을 요청한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번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위해 세포들은 매 순간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이성 세포’와 ‘감성 세포’는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출출 세포’와 슬그머니 등장해 야릇한 기운을 뿜는 ‘응큼 세포’ 등 각종 세포가 총출동한다. 겉보기엔 평범한 30대 직장인 유미의 일과 사랑 이야기는 동분서주한 세포들의 활약상에 힘입어 5년 7개월 동안 누적 조회 수 32억 뷰, 댓글 500만개를 기록했다.

7일 512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친 이동건(39) 작가는 e메일 인터뷰에서 “무사히 연재를 마쳐서 너무 홀가분하다”고 밝혔다.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맞아! 사람들은 행동과 다르게 마음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라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려는” 처음 목표를 이룬 것은 물론 호응에 힘입어 당초 예정보다 훨씬 장기간 연재를 이어가면서 작가 자신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작품을 일정한 퀄리티로 만들어내는 부분이 참 어려웠어요. 스토리에 대한 고민은 늘 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략 1년간 연재하면 잠시 다음 이야기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무리한 진행은 결국 무리한 결과를 낳게 되더라고요.”

“남자 주인공은 없어. 주인공은 한 명”

이동건 작가는 ’팬들이 붙여준 ‘무빙건’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든다“며 ’댓글을 직접 정리할 여력이 안되서 직원분이 꼼꼼하게 정리된 댓글을 주시면 독자 반응을 살펴보고 때로는 작품에 반영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사진 이동건]

이동건 작가는 ’팬들이 붙여준 ‘무빙건’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든다“며 ’댓글을 직접 정리할 여력이 안되서 직원분이 꼼꼼하게 정리된 댓글을 주시면 독자 반응을 살펴보고 때로는 작품에 반영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사진 이동건]

다섯 번의 연애를 통해 상대보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유미의 성장담도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 남자친구가 인생의 1순위였던 유미는 세 번째 이별 과정에서 ‘게시판 관리자 세포’를 통해 “남자 주인공은 따로 없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최우선순위가 되면서 글 쓰는 재능을 발견해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에 도전하면서 ‘올해의 로맨스 작가’로 선정되는 등 일도 더 잘 풀리게 된다. 여자보다 여자의 마음을 더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웹툰 작가 역시 여자로 아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디테일하게 표현한다는 뜻이니 즐거운 오해죠. 아마 만화이긴 하지만 짧은 글처럼 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인의 인생을 처음으로 설계하는 나잇대가 20~30대이다 보니 성별을 떠나 인간 김유미와 비슷한 인생 고민도 하고 연애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면서 공감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의 30대 시절과 대입해도 딱히 다르지 않거든요. 성별과 무관하게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감정이나 욕구는 비슷할 테니까요. 저나 지인의 경험담이 녹아든 에피소드도 있고, 아내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합니다.” 2015년 7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과 가장 큰 차별점에 대해서도 “‘인사이드 아웃’이 감정을 의인화 했다면, ‘유미의 세포들’은 욕망을 의인화했다”며 “행복한 감정을 얻고자 행동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고, 슬퍼질 때도 있는 것처럼 접근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20대는 베이시스트, 30대부터 만화 그려

유미의 머릿속에서 일하고 있는 세포들. 유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사진 네이버웹툰]

유미의 머릿속에서 일하고 있는 세포들. 유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사진 네이버웹툰]

사람마다 각기 다른 프라임 세포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다. 유미의 프라임 세포는 사랑 세포와 작가 세포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사진 네이버웹툰]

사람마다 각기 다른 프라임 세포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다. 유미의 프라임 세포는 사랑 세포와 작가 세포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사진 네이버웹툰]

이 작가 역시 2011년 웹툰 ‘달콤한 인생’으로 데뷔하기까지 여러 직업을 경험했다. 미대를 자퇴하고 인디밴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20대를 보내고 문구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회사가 업종을 바꾸면서 제품 디자인 업무가 사라지자 다이어리 스티커를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했고, 이 때 만화를 그리면서 웹툰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유미의 세포들’에 나온 것처럼 미래에서 과거의 자신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다면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 만화를 그려!”라고 답했다. “‘뒷북 세포’는 제 일상에도 종종 나타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만나고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와서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아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지 그랬어’라는 식으로.”

자는 동안 세포들을 통해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모습. [사진 네이버웹툰]

자는 동안 세포들을 통해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모습. [사진 네이버웹툰]

지난 5월 드라마 제작 소식이 전해지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가상 캐스팅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튜디오드래곤과 스튜디오N이 공동제작하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쓴 송재정 작가가 극본을 맡으면서 정유미ㆍ박보영ㆍ서현진 등 추천이 쏟아졌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주 2회 연재에서 5월부터 주 1회로 줄어들면서 이야기가 너무 급하게 마무리됐다는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있다. 초중반에 등장한 남자친구 구웅이나 유바비에 비해 신순록의 분량이 너무 적다거나 순록과 유미의 결혼으로 끝나면서 뻔한 결말이 돼버렸다는 지적이다.

이에 이 작가는 “가급적 이전 에피소드에서 다룬 내용이 중복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순록이는 불필요한 에피소드 없이 빠르게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혼이 어떤 결과물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야기 속에서 유미가 선택한 부분일 뿐이죠. 전체적으로 풀어낼 이야기는 다 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편이나 외전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드라마는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전문가들이 잘 만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연말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아무 생각 없는 휴가를 즐기고 싶다”며 “그동안 즐겁고 유쾌한 에너지를 받으면 다음 작품도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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