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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만들어 폰 잠금 열겠다는 秋…취임땐 "인권 수호" 강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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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채널A 강요미수 의혹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숨기는 것은 ‘악의적’이라며 잠금 해제를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검찰 안팎에서는 추 장관이 ‘검찰 개혁’을 주장하며 강조해 온 인권 중시를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의 지시라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휴대폰 비밀번호 안 밝히면 강제로

추 장관은 12일 한동훈 검사장을 독직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 기소 적정성을 조사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언급했다.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외국 입법례를 참조해서 법원 명령 등 일정 요건이 갖춰지면 잠금 해제 등을 강제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제재하는 법률을 제정할 것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검찰 내부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는 추 장관이 무리하게 ‘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그간 추 장관이 검찰 개혁의 필요성과 함께 강조해 온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추 장관은 취임 당시 “법무부는 ‘인권, 민생, 법치’라는 3가지 원칙을 확고히 견지해 가고자 한다”며 법은 인권 수호의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었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려 “그런 법이 ‘자백을 강제하고 자백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법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며 “인권 보장을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서 쌓아 올린 원칙들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유린해도 되나. 그것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정부에서”라고 밝혔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도 “피의자의 인권 보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법무부 장관의 태도가 놀라울 뿐”이라며 “나중에 진술 거부라도 하면 진술거부권도 폐지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특히 추 장관이 언급한 영국의 경우 국가의 안전이나 안녕을 저해하는 등의 경우에만 해당 법이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한동훈 검사장(왼쪽)과 정진웅 차장검사. [연합뉴스]

한동훈 검사장(왼쪽)과 정진웅 차장검사. [연합뉴스]

‘정치 공세’ 비판…위헌 소지 분석도

검찰 일각에서는 추 장관이 검찰 개혁과 인권 중시 등 미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에는 ‘정치 공세’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추 장관은 그간 검찰 인사·수사지휘권 행사·감찰권에 이어 최근에는 검찰 특수활동비를 문제 삼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세웠다.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 절제되지 않고, 정치권에서의 공격용 카드처럼 활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그간 인권 옹호를 강조한 것은 미명에 불과했나. 제 편의 인권만 인권이고, 상대편 인권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법무부 장관이 정치적 공세 중 하나로 법을 꺼내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안 불면 강제로 하겠다’는 것은 정쟁용 카드에 어울리지 인권 옹호와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추 장관의 지시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겨냥해 의무를 부과하는 처분적 법률이라며 위헌 소지가 있다고 분석한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법이란 것은 일반적인 상황을 규율해야 하는데 장관의 지시 내용은 사실상 특정인이나 특정 사건에 대해서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분적 법률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위헌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는 평등 원칙에 반(反)한다는 취지다.

한편 추 장관이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테러방지법’과 관련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하며 했던 발언도 주목된다. 당시 추 장관은 “테러 방지라는 빌미로 결국은 국가정보원이 국민의 인권과 사생활 침해는 물론 인신 보호를 위한 형사 절차에 대한 헌법상의 기본권마저도 전면 부정하게 만든다”라고 지적했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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