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에 헌혈하려 몸보신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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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그러지 않으랴마는,푹푹 찌는 여름이면 그들은 한층 몸보신에 신경을 쓴다. 매일 야외에서 밤근무를 하는 데다 헌혈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헌혈 대상은 색다르다. 모기다.

'그들'이란 국립보건원 의동물과의 모기 담당 연구원들. 우리나라 모기의 생태와, 모기들이 질병을 어떻게 옮기는지를 낱낱이 밝히는 연구를 한다.

여름밤이면 그들은 서울 근교 소 목장을 돌아다니며 모기를 잡아와서는 자신들의 피를 먹여가며 애지중지 키운다.

"헌혈은 1주일에 한번 쯤이죠. 모기가 수백마리 들어 있는 모기장 안에 팔을 들이밉니다. 따끔거리기는 하는데…. 그보다는 조금 지나 물린 데가 빨갛게 부었을 때 가려움을 참는 게 더 힘들어요." 이원자(45) 연구관의 말이다.

야외에서 모기를 잡을 때는 '흡충관'을 쓴다. 끝에 방충망이 달린 플라스틱 대롱에 부드러운 관을 끼운 것이다.

소의 피를 잔뜩 빨아먹고 몸이 무거워져 축사 벽에 앉아서 쉬는 모기에게 관을 가까이 대고 훅 빨면 모기가 방충망에 탁 걸린다. 모기가 많은 곳에서는 하룻밤에 2백마리도 잡는단다.

그렇다고 모기 잡기가 콧노래를 부르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뒷걸음질치는 소와 축사 벽 사이에 끼어 숨이 막히기도 하고, 흔들어대는 꼬리에 맞거나 소똥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때론 반바지만 입고 모기를 꾀는 인간 미끼가 되기도 한다. 2000년 이런 인간 미끼 노릇을 했던 신이현(39) 연구사는 그만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렸다.

말라리아는 잠복기가 1년 가까이 돼 증세는 지난해 여름에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모기가 퍼뜨리는 말라리아는 치명적인 병은 아니라지만,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신 연구사는 열이 펄펄 끓는 와중에도 약을 먹지 않고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이 모기 저 모기가 자신을 물게 해 혹시 말라리아를 옮기는 새로운 종류의 모기는 없는지 실험한 것.

말라리아 약을 먹으면 몸 속의 병원체가 죽기에 그냥 버텼다. 그런 보람이 있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말라리아 매개 모기 한 종류를 찾아냈다.

최근에는 '서(西)나일 열'이라는 병을 옮기는 일본 숲모기도 국내에서 찾아냈다. 서나일 열은 최근 미국 남부에서 7명을 사망케 했으며, 이스라엘에서도 2000년 40여명이 사망했다.

서나일 열을 옮기는 모기는 발견됐지만, 아직 바이러스는 들어오지 않았는지 우리나라에서 이 병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원자 연구관은 "병은 예방을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서나일 열 관련 모기에 대한 연구가 꼭 필요하다"면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분야에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돼 서나일 열 연구도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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