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준 LG화재 사장 "보험과 마라톤은 닮은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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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이나 마라톤이나 다를 게 없어요."

마라톤광으로 알려진 LG화재 구자준(具滋俊.52)사장은 대뜸 '보험-마라톤 동질론'을 펼친다.

그가 꼽는 보험과 마라톤의 공통점은 네가지다.

우선 철저한 준비와 기초체력이 없으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 마라톤이야 원래 그렇다지만 사업도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무슨 일이건 하루이틀의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그는 오랜 마라톤 경력에서 터득했다.

둘째는 적응력과 순발력이다. 코스를 사전에 잘 숙지해 놓고 어느 지점에 이르면 스퍼트를 해야 하는 마라톤과 고객의 취향과 성격을 파악해 놓았다가 고객이 솔깃하는 눈치라도 보일라치면 바로 파고드는 보험영업.점점 비슷해진다.

그 다음 공통점은 지구력. 그는 마라톤 풀코스 42.195㎞를 뛰다보면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란다. 그러나 보험업은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보험상품 하나를 팔기 위해 문전박대와 냉대를 무릅쓰고 같은 고객을 수십번 찾아가다 보면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태생적으로 꾹 참는 성품을 가졌거나 꾸준한 노력으로 그만한 인내심을 키우지 않으면 결코 버텨내지 못하는 게 바로 마라톤과 보험이라는 얘기다.

마지막 공통점은 고독이다."마라톤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입니다."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마라토너들이 으레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뛰어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갖는 무게는 만만치 않다.

"보험은 단기간에 승부를 낼 수 없어요. 마라톤처럼 장기 레이스입니다." 보험처럼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팔다 보면 때로는 허망하고 때로는 자존심도 상한다. 이럴 때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보험맨이 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具사장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16년 전 금성정밀 미국사무소장으로 있으면서 담배를 끊고부터다.

그후 틈만 나면 달리기를 해왔지만 마라톤에 정식으로 입문한 것은 최근이다.

전자공학도 출신으로 방위산업체에서 레이더.미사일을 개발하던 그는 1999년 생소한 LG화재 부사장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마라톤에 출전해 보기로 했다. 주위에선 "다늦게 무슨 마라톤이냐"는 소리를 했지만 그는 그해 가을 중앙일보 마라톤 대회에서 10㎞를 뛰었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 부산마라톤(하프), 지난해 후쿠호카 마라톤(일본.하프)과 인천마라톤(하프)에 잇따라 출전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LA마라톤에 풀코스 도전장을 던졌다.

"노조위원장과 함께 뛰었습니다. 주변에서 노사화합의 장이라며 많은 관심을 보였지요. 그런 부담 때문인지 30㎞ 지점에서 그만 발톱이 빠지고 다리에 쥐가 나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때 사진기자들이 몰려들었어요. 대개 이 지점부터 플래시를 터뜨리거든요. 정신이 바짝 났지요. 사진기자 덕에 얼떨결에 완주했어요."

이때 그의 기록은 4시간49분. 비록 전문 마라토너들의 기록과는 거리가 먼 수치지만 그에게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 는 고통과 고독을 이기고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의 벅찬 감동은 뛰어보지 않고는 모른단다. 뒤늦게 시작한 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해 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자부심도 컸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具사장의 저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기초체력 강화를 경영의 첫째 원칙으로 강조한다.

"기초부터 다져야지 갑자기 속도를 내다간 건강도 영업도 역효과가 납니다.마라톤을 통해 기초체력의 중요성을 깨달았지요."

이같은 경영철학 덕에 그는 '보험업계의 히딩크'라고 불린다. 그가 마라톤 완주를 통해 체험으로 보여준 '기초중시'의 경영철학에 이제는 직원들도 공감한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정식 대회만 무려 열아홉번이나 참가했다.

짧은 마라톤 경력치고는 쉽지 않은 기록이다. 그는 올 가을에는 국내 풀코스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내년에는 스웨덴의 스톡홀름 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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