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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 소년 “미 대통령 되겠다” 입에 돌 물고 발음연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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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 78세 3수 대통령

지난 3월 3일 ‘수퍼 화요일’(공화당·민주당 대선후보 결정에 중요한 예비 경선일)에 승기를 잡은 후 단상에 오른 조 바이든 당선인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왼쪽), 동생 밸러리(오른쪽). [AFP=연합뉴스]

지난 3월 3일 ‘수퍼 화요일’(공화당·민주당 대선후보 결정에 중요한 예비 경선일)에 승기를 잡은 후 단상에 오른 조 바이든 당선인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왼쪽), 동생 밸러리(오른쪽). [AFP=연합뉴스]

‘바-바-바이든’.

상원 당선 뒤 첫째 부인과 딸 잃어 #부통령 땐 분신인 아들 세상 떠나 #‘3수 대통령’ DJ 넥타이 간직하기도 #교수 본업 있는 영부인 질 바이든 #“난 배짱 있는 여성” 선거 적극 참여 #여동생, 선거 전략가로 숨은 공신 #트럼프의 쿠슈너 같은 역할 주목

조 바이든은 유년시절 학급 친구들 사이에 이렇게 불렸다. 그의 말 더듬는 버릇을 흉내 낸 별칭이었다. 좌절할 법도 하건만, 소년 바이든은 그때부터 ‘말로 먹고사는 직업’인 정치인, 그것도 대통령을 꿈꿨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결코 불평하지도, 설명하려 들지도 말라”고 가르쳤다.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돌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을 하거나, 문장을 통째로 외워 읽기도 했다. 그로부터 60여년. ‘말더듬이’ 바이든은 ‘방송 스타’ 출신의 현직 대통령을 꺾고 4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3수 끝 승리다.

그는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천주교를 믿는 아일랜드 출신 증조부모가 미국에 이민 와 터 잡은 곳이다. 그는 개신교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 존 F. 케네디에 이어 두 번째 가톨릭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그의 롤 모델이었다.

그는 28세였던 72년 11월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최연소로 당선됐다. 직후 부인과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두 아들도 크게 다쳤다. 의원직 사퇴도 고려했지만, 주변의 만류로 포기하지 않았고 두 아들의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바이든은 77년 두 번째 동반자이자 이제 영부인이 될 질 바이든과 결혼식을 올리고 딸 애슐리를 낳았다.

바이든 일대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바이든 일대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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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초선 이후 내리 36년을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으로 지냈다. 같은 기간 가족이 사는 델라웨어와 의사당이 있는 워싱턴을 왕복 4시간 걸려 기차로 출퇴근했다. 기차 통근은 부통령 당선 뒤 전용 차량이 나오면서 끝났다.

바이든의 대권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88년 첫 도전에서는 당내 경선 때 표절 시비에 휘말려 낙마했고, 이후 뇌동맥류로 쓰러졌다. 훗날 바이든은 만약 자신이 낙마하지 않았다면 선거 운동을 하다 아예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한 2008년에는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에 밀려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도전을 끝냈다. 대신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됐다.

부통령직을 마무리할 즈음인 2015년에 자신의 분신과 같은 아들 보가 세상을 떠났다. 항암 투병을 하던 보는 죽음을 앞두고 “용기를 내 아버지의 길을 가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내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하면 79세로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바이든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한때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 전 대통령이 수차례 도전 끝에 대통령직에 오른 스토리는 바이든에게도 영감을 줬다. 이미 경선에서 한 차례 낙마를 경험한 뒤 2001년 청와대에서 고인과 재회했을 때 그는 김 전 대통령에게 “넥타이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고 두 사람은 즉석에서 넥타이를 바꿔 맸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넥타이에는 수프 자국이 묻어 있었는데 바이든은 이를 지우지 않고 보관해 왔다고 한다. 그의 이 넥타이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부인 질 바이든(69)은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입성하는 꿈을 이루게 됐다. CNN은 질 여사를 “그 어떤 전임자들보다도 영부인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상상을 가장 많이 했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세컨드 레이디(부통령 부인)로 지내며 퍼스트레이디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는 점에서다.

질 여사는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 둘째 날인 18일 영상을 통해 담담하게 남편의 아픈 가족사를 꺼내며 ‘치유의 힘’을 이야기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가족의 어려움을 극복한 그 회복력으로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바이든 당선인이 회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질 여사의 도움이 컸다. 지난 2월 뉴햄프셔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경선 행사에서 남편 바이든에게 달려드는 시위자를 가로막은 질 여사는 후에 기자들에게 “나는 배짱 있는 필라델피아 출신 여성(I’m a good Philly girl)”이라고 말했다. 이후 3월 로스앤젤레스 집회에서도 연단으로 난입한 여성 시위자의 손목을 질 여사는 빠른 속도로 잡아채 남편을 보호했다.

질 여사는 정치인 남편을 내조하며 딸을 낳고, 교육학 박사학위까지 땄다. 이후 2009년 남편이 부통령이 됐을 때도, 그는 교수 직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질 여사는 퍼스트레이디가 되더라도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이민자 등 소외계층에 영어를 가르치는 전업 교수직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의 여동생 밸러리 바이든 오웬스(75)는 대선 캠프의 숨은 전략가다. 바이든은 “그는 나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믿도록 했다”고 말할 정도로 밸러리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 밸러리는 바이든의 고교 학생회장 출마 때부터 이번 대선까지 전면에서 혹은 배후에서 선거를 지휘했다. 밸러리가 바이든의 백악관 입성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이자 백악관 선임보좌관인 제러드 큐슈너같이 바이든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지 주목된다.

정은혜·백희연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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