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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협상, 트럼프·김정은 투톱쇼 끝나고 차근차근 ‘바텀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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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 한반도 영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3년 12월 부통령 당시 판문점 인근 올렛초소(GP)를 방문, JSA경비대대 소대장으로부터 비무장지대(DMZ) 경계태세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3년 12월 부통령 당시 판문점 인근 올렛초소(GP)를 방문, JSA경비대대 소대장으로부터 비무장지대(DMZ) 경계태세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관련 정책은 ‘ABT’를 지향할 것인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당선을 지켜본 한국 외교가의 가장 큰 관심사다. ABT는 ‘Anything But Trump’를 줄인 말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모두 배척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미국에서 이념 성향이 다른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돼온 현상이다.

바이든, 북 인권에도 목소리낼 듯 #북, 새 정부 초기 ICBM 도발 가능성 #동맹 중시해 미군감축 않겠지만 #‘방위비 압박 철회’ 전망은 오산

당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했던 ‘톱 다운’ 방식의 북·미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예고된다. 톱 다운 방식을 공개 지지했던 정부도 달라진 백악관을 상대해야 한다.

바이든 당선인이 그간 공개했던 대북 접근법은 ‘원칙에 입각한 대북 관계’다. 그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북한이 핵 능력을 줄이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겠다(10월22일 최종 TV토론회)”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쇼맨십 정상회담’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결과가 도출돼야 만남에 응하겠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핵 능력 감축의 수준과 정도를 정하려면 북한의 전체 핵 능력을 파악하는 게 전제이기 때문이다.

즉 협상이 시작된다 해도 핵신고를 둘러싼 1라운드부터 다시 시작이란 뜻이다. 이에 따라 향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실무협상→고위급협상→정상회담’이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고, 바이든 시대에선 북·미 협상이 ‘천천히 그리고 까다롭게’ 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비핵화 협상이 궤도에 올라도 트럼프 스타일처럼 전격적 빅딜이 성사될 가능성은 더욱 작아졌다.

바이든 시대, 동맹·북중 관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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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이든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이는 한국 정부에도 새로운 압박 요소가 될 수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인권 문제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보다 민감하게 대응하는 바이든 정부는 한국 정부의 대북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불참 등에 불만을 표출할 수 있다”며 “북한 인권을 놓고 미국이 한국 정부에 주문하는 것들이 많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의 퇴장을 지켜보는 북한의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는 도발 수위를 조절했지만, 미국의 새 정부 출범을 틈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같은 무력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 재검토를 진행하며 북한과의 대화가 지체되는 기간 동안 북한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은 작다”며 “신형 ICBM이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의 첫 과제는 그래서 북한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다른 동맹 현안도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우선 교착 상태에 빠진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과 관련, 동맹의 가치를 중시하는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도 돈으로 계산해 따지는 트럼프와는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상 압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라는 지적이다. 동맹국들이 보다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와 의회를 막론하고 워싱턴 전체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겠지만, 방위비분담금 인상 방침이 철회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훼손한 동맹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비교적 순탄하게 협상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바이든 정부 역시 한국의 분담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또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를 한국을 압박하는 카드처럼 활용했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지상군 위주로 2만 85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주한미군 규모에 급격한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연합뉴스에 보낸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 기고문에서 “우리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기보다 동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함께 설 것”이라고 썼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바이든 당선인은 자신이 분명히 밝혔던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철수안을 폐기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 병력의 재배치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미세 조정’은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결국 이런 현안들은 결국 보다 상위구조의 문제인 미·중 관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바이든 당선인이 지중파라는 평가도 있지만, 미·중 간 갈등은 이미 구조적 차원의 대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바이든 시대에도 이런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아시아·태평양의 동맹국과 우방국들과 연계해 중국의 군사·경제적 부상을 억제하겠다는 미국의 전략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뜻이다.

이철재·박용한·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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