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바이든 시대, 치유의 시간이 왔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09 00:02

업데이트 2020.11.09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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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대선 승리 연설을 하면서 함박웃음과 주먹 쥔 손으로 지지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미국의 통합과 치유를 거듭 강조하며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을 약속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대선 승리 연설을 하면서 함박웃음과 주먹 쥔 손으로 지지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미국의 통합과 치유를 거듭 강조하며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을 약속했다. [AP=연합뉴스]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7일(현지시간) 미국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우여곡절 끝에 대선 승자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역전승은 없었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이 본 그의 과제
① 트럼프가 훼손한 민주주의 회복
② 추락한 미국의 국제 리더십 복구
③ ‘제2 창궐’ 직면한 코로나 차단
④ 북핵 실질적 해결, 한·미동맹 강화

이번 대선은 바이든이 승리했다기보다 트럼프가 패배한 게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대사건이었다. 바이든 당선인의 어깨는 무겁다. 대통령에 취임할 땐 79세인 노령의 바이든을 기다리는 것은 트럼프의 4년간의 실정이다. 이를 만회하며 사라져가던 미국의 영혼을 되살릴 책무가 그에게 떨어졌다. 바이든은 당선 일성으로 “지금은 치유의 시간”이라며 “붉은 주(공화당)와 푸른 주(민주당)를 가르지 않고 미합중국 전체를 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트럼프 4년간 빈부 간, 도농 간, 인종 간은 물론 이념과 세계화, 지구 온난화라는 국제 이슈를 놓고도 갈린 나라가 됐다. 트럼프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견용(犬用) 호루라기를 불며 인종 갈등과 반유색인종 정서를 조장했다. 그 기저에는 수 세기에 걸친 과거의 노예제도 유산이 버티고 있었지만, 변화하고 개방되고 세계화하는 사회인 미국에서 트럼프의 인종 문제에 대한 파괴적 행동과 정책은 그의 임기 중 치유할 수 없는 폭탄이자 고질병이 됐다. 여기에 트럼프는 트위터에 800만 추종자를 거느리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미국 민주주의가 소멸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자처하던 미국에서 민주주의 존속의 우려가 생겨난 것은 커다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취임 이후 바이든의 가장 시급한 임무는 양분된 미국을 하나의 미국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역행했던 트럼프가 끼친 상처를 치료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바이든 당선으로 미국이 건국 이래 3세기 동안 지켜온 민주주의 원칙과 헌법에 명시된 자유, 평등,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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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은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 등 47년간 공직을 맡아 외교·안보에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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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트럼프로부터 물려받은 건 동맹국과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적대국들이 경시 못 할 모습을 되찾는 ‘동맹 관계 정상화’라는 어려운 과제다. 트럼프는 안보 문제를 포함해 모든 외교 사안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계산해 결정했다. 특히 2020년 재선에 도움이 되는 일에 집중했다.

이제 바이든은 트럼프가 추락시킨 미국의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고 국제적 리더십을 복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관계도 출구 없이 극도로 악화시켰다. 따라서 바이든은 세련된 외교로 미·중 관계에서 균형과 평화적 공존을 추구한다는 중요한 과제도 떠맡았다. 바이든이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한 이래 40여 년간 필자는 그와 그의 측근들과 친교를 이어왔다. 나는 그들이 동북아 정세와 한국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바이든의 대통령 역임은 한·미 동맹의 강도를 한 차원 높여줄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트럼프의 대북한 외교는 많은 양보를 하더라도 북핵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만들어낸 연극에 불과했다. 한국은 여기에서 실속 없는 조역에 만족해야 했다. 트럼프는 불합리한 방위비 분담 등으로 나토 국가들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결국 트럼프는 동맹국들을 소원하게 만들고 독재자들과 친교를 키웠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던 토니 블링컨이 트럼프 외교는 인물도, 과정도, 전략도 없다고 비난했던 게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미국에 호의를 갖고 있던 이들에게 마돈나의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지 말아 다오” 대신 “미국이여 너를 위해 울어주려 한다”는 심정을 갖게 했다.

바이든은 또 제2기의 창궐 단계에 들어선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와 방지에 전력해야 한다. 트럼프는 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가 극히 심각하고 쉽게 확산된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는데도 국민에게 심각성을 숨기고 곧 퇴치될 것으로 안심시켰다. 그러나 거짓은 만들어낼 수 있어도 사실을 없앨 수는 없다. 지금 미국에선 하루 확진자가 11만 명을 넘고 있다. 바이든은 약속했던 대로 전문가들을 믿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방역 조치를 철저히 하는 한편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트럼프가 악화시켰거나 도외시했던 지구 온난화, 환경, 세계 인권 등에서도 바이든은 미국의 리더십을 되찾아야 한다. 트럼프는 미국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시키고 다자간 교역 협력에 반발해 오바마가 만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는 오류를 범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국제적·지역적 교역 협상에서 리더십 자리를 내려놓고 중국의 비중을 높여줬다.

무엇보다도 바이든은 트럼프가 등한시했던 국제 전략을 다시 짜고 동맹국들과 공동의 평화 번영 및 안전을 추구하는 국제 환경을 받쳐줄 축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은 물론 우리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주변 및 세계 각국과 함께 다자 안보 협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의 성의와 노력에 따라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 안정, 나아가 탄력 있는 분단 관리에 더욱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한승주

한승주

김영삼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데 이어 노무현 정부 때 주미 한국대사를 거친 한국 외교의 원로다. 고려대 명예교수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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