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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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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매년 4월 15일,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모든 선수가 똑같은 등 번호를 단다. 42번. 1997년 4월 15일, MLB는 리그 모든 팀에서 이 번호를 영구결번했다. 흑인 첫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1919~72)의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 입단 50주년을 기념해서다. 결번 결정 당시 등 번호가 42번인 선수 7명은 그대로 썼다. 2013년 은퇴한 뉴욕 양키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지막 42번이다.

은퇴 선수 등 번호를 영구히 쓰지 않는 것, 또는 그 번호를 영구결번(retired number)이라 부른다. 세계 첫 사례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 에이스 베일리(1903~92)의 6번이다. 공격수였던 그는 1933년 경기 중 머리를 다쳐 이듬해 은퇴했다. NHL은 치료비 모금을 위해 자선 경기(훗날 올스타전으로 발전한다)를 열었다. 이에 맞춰 그의 등 번호를 영구결번했다. 국내 첫 사례는 프로야구 OB 베어스 김영신의 54번이다. 1986년 그가 사망하자 구단이 영구결번했다. 그는 당시 2년 차였다. 공헌을 기려서가 아니라, 사망 등을 이유로도 간혹 영구결번한다.

최근 국내에서 두 프로선수가 영구결번 얘기가 나왔다. 프로야구 김태균(38)의 52번과 프로축구 이동국(41)의 20번이다. 김태균은 2001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고, 해외 진출 기간(2010~11년)을 빼고는 한화에서만 뛴 원 클럽 맨이다. 내년 은퇴식 때 영구결번을 최종 결정한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은 2009년부터 전북 현대에서 뛰었다. 1994년 창단한 전북은 그가 입단한 해에 처음 우승했고, 올해까지 8차례 우승했다. K리그 영구결번은 김주성(부산 대우 로얄즈 16번)과 이동국 둘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열기에 편승해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는 입단 2년 차 송종국의 24번을 영구결번했다. 해외에 진출했던 그는 2005년 귀국해 다른 팀(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은퇴 전까지 부산에 맞서 맹활약했다. 부산은 2007년 결번을 취소했다. 적폐와 농단을 향해 칼끝을 겨눴던 검객(檢客)이 있다. “조직을 사랑하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그의 말에 감동해 영구결번이라도 할 것 같던 이들이 요즘 이를 간다. 분위기에 취해 일방적으로 영구결번한 뒤 이를 갈았던 어떤 축구단처럼.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