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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난(亂)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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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亂’(난)이라는 한자(漢字)는 역사가 깊다. 고대 청동기 등에 새겨진 금문(金文)에서도 발견될 정도다. 그때는 글자 모양이 사뭇 달랐다. 한자 전문가인 하영삼 경성대 교수에 따르면 이 글자의 금문은 위와 아래에 손이 하나씩 있고, 그 가운데에 실패를 단단히 묶고 있는 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제대로 꼬여버린 실을 사람이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다시 말해 복잡하고 혼란한 양상을 표현한 것이다.

한 포털사이트의 디지털 자전(字典)에는 이 한자의 뜻이 여러 개 등장하는데 그 중 첫머리에 오른 건 ‘어지럽다’다. 뒤이어 ‘손상하다’, ‘음란하다’, ‘무도하다’, ‘포악하다’ 등 긍정적이지 않은 뜻들이 뒤를 잇는다. 물론 반란·민란·왜란·호란 등의 용례로 익숙한 ‘난리’의 뜻도 있다.

검사의 항명에 이 상서롭지 못한 한자가 붙은 건 그만큼 혼란스럽고 정상이 아니며 반란의 성격이 강한 현상이기 때문이라서일 게다. 검란(檢亂)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건 1999년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의 항명 파동 때였다. 그때까지 검사동일체 원칙과 상명하복의 문화로 다져진 검사들에게 공개 항명이란 꿈도 꿀 수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심 고검장 이후 검란은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이벤트가 됐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에는 검사들이 ‘검사와의 대화’ 자리에서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맞장’ 뜨는 모습까지 연출할 정도였다.

난리로서의 난은 외세의 침략을 폄훼해 붙이는 경우가 아닌 한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성공한 난은 ‘혁명’이라는, 보다 고급스러운 호칭을 부여받았다. 검란은 많은 경우 난에 그쳤지만, 혁명이 된 적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검찰 내 추문 무마를 위해 대검 중수부 폐지 카드를 쓰려 했던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간부들의 반발에 밀려 쫓겨나듯 직을 떠난 것이 대표적 혁명 사례다.

검란의 분위기가 다시 무르익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검찰 개혁을 비판한 평검사를 실명 비판하면서 이른바 ‘좌표’를 찍은 게 도화선이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자필서명이 인터넷 댓글로 바뀌었지만, 검사 300여명의 ‘커밍아웃’ 동조 댓글은 명백한 연판장이다. 이번 검란은 난에 그칠까, 아니면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젊은 검사들의 행보를 주시해보자.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