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홍남기 해임청원 21만명, 이런 부총리는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해임을 강력히 요청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동의가 28일 21만명을 넘어섰다. 경제사령탑에 대해 수십만의 국민이 ‘해임하라’며 직접 나선 것은 홍 부총리가 처음이다.

‘사면초가’ 몰린 경제사령탑 #‘주식 양도세 3억’ 고수가 반발 불러 #전세난·고용절벽 현실인식도 괴리 #청와대·여당엔 제목소리 못내고 #빈번한 정책 뒤집기로 신뢰 잃어

해임 청원은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을 3억원(한 종목당 주식 보유액)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홍 부총리가 고수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단순히 3억원 기준만 가지고 그 많은 사람이 해임 동의를 했다고 봐선 안 된다”고 단언한다. “경제 실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개각 요구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간 경제부총리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문성에 기반한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 리더십’이란 궤도를 유지했다. 정치적 입김과 비전문적 훈수에 대한 소신 대응은 기본이었다. 2010년 12월 이른바 ‘예산파동’ 때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우리가 바보냐, 너희가 예산권이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윤증현 기재부 장관은 예산안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 재정 건전성 논란 등에서 보여지듯 청와대·여당에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지금 홍 부총리 위상을 보면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청와대나 여당에서 요구하는 것을 집행하는 거로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커지는 시장과의 인식 괴리도 신뢰를 갉아먹는 요인이다. 이른바 ‘전세 절벽’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전세가 상승 폭이 둔화되고 있다”(14일), “전세 실거래가 늘었다”(18일) 등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홍 부총리 본인이 ‘전세 난민’이 될 처지란 사실까지 알려진 터라 여론 비판과 조롱의 강도는 더 컸다. 코로나19로 인해 올 9월 취업자 수가 전년 대비 39만명 급감했다는 통계가 발표된 16일에도 홍 부총리는 “10월부터 고용시장 회복세가 재개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다.

역대 장수 경제부총리

역대 장수 경제부총리

작은 그림에만 매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각종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를 통한 홍보에 열심이다. 지난 24일엔 재정준칙에 대한 ‘직강’ 글 5개를 페이스북에 한꺼번에 올리기도 했다. 시장 영향을 우려해 SNS 활용을 자제하는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대조적이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공기업정책학과 교수는 “홍 부총리가 매일 정책 발표를 도맡아 하다시피 하고 있다”며 “그런데 정책 간 충돌하는 것도 많고, 발표한 정책이 며칠 안 돼 바뀌는 일이 너무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임명 초기부터 이어진 ‘패싱’ 논란도 부담이다. 지난 7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대해 홍 부총리가 해제 검토 가능성을 언급하자, 다음날 바로 국토교통부 차관이 “검토 안 한다”고 부인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벨트는 계속 보전하겠다”고 정리하며 일단락됐다. 부동산 정책은 물론 세제 개편안, 각종 거시·재정 정책에서도 홍 부총리의 주장이 묵살되거나 번복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경질설’ ‘패싱’ 논란이 일 때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잘해달라”(3월 13일), “힘 있게 추진하라”(7월 21일) 등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실제로 주도권을 발휘한 사례는 별로 없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개성 강한 정치인 출신을 산하 경제부처 장관에 앉혀놓고, 정작 부총리는 조율에 한계가 있는 인물로 임명했다”며 “결국 조율을 하지 말란 얘기로, 홍 부총리 개인의 한계도 있지만 임명권자의 실책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