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신비를 밝힌다] 왼쪽 뇌의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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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뇌는 오른쪽과 왼쪽의 두 부분으로 나눠지지만 외형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두 뇌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인간의 언어는 오로지 왼쪽 뇌에서만 처리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왼쪽 뇌는 어떻게 신체의 오른쪽으로부터 도착한 정보를 아는 것일까? 2억개 이상의 뇌신경세포 축색돌기다발이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곳을 통해 두 부분은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만약 두 뇌 사이의 정보 흐름이 끊어지거나 고장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1960년대 초 미국의 뇌과학자였던 로저 스페리는 이에 따른 현상을 규명했다.

50~60년대에는 간질병 환자에게 축색돌기다발을 자르는 수술을 했다.스페리는 이러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축색돌기다발이 잘린 환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인이었다. 그러나 스페리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그는 환자가 오른쪽 눈으로만 자동차 그림을 보도록했다. 그런 뒤 환자에게 무엇을 봤느냐고 물어보자 환자는 주저없이 "자동차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그림을 왼쪽 눈으로만 보게 한 환자(이 경우에는 오른쪽 뇌에만 정보가 도달한다)는 같은 질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는 예상했던 결과다. 왜냐하면 왼쪽 뇌만이 언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 뇌 간의 연결통로인 '다리'가 끊겼기 때문이다.

스페리는 두번째 실험에서 더욱 흥미있는 결과를 접하게 된다. 이번에는 환자에게 자동차 그림을 왼쪽 눈에만 보여주고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다. 환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그의 왼손으로 여러가지 물건 그림(자동차.집.공 등) 중에서 아무 것이나 하나만 집어보라고 하자 환자의 오른쪽 뇌 조종을 받는 왼쪽 손이 자동차 그림을 선택했다.

그러고나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답은 "모르겠다"가 돼야 한다.

그러나 그 답 대신 분리된 뇌를 가진 환자의 왼쪽 뇌는 거짓말을 했다. 어떤 이는 자동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또 다른이는 우연히 자동차가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단순히 오른쪽 뇌가 자동차의 그림을 보았기 때문에 선택했는 데도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렇게 뇌가 분리된 환자의 특이한 행동은 환자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의 행동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페리는 뇌가 유전적 프로그램과 뇌의 연결선들에 기반을 두고 현재의 상황과 조건에 가장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램되었기 때문에 단지 기계적.자동적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왼쪽 뇌가 우리의 행동을 관찰한 뒤 그러한 행동을 한 동기를 만들어내고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만약 로저 스페리의 이론이 옳다면 우리 인간은 의지나 결정의 자유가 없는 기계와 같이 행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결정이라고 믿는 것은 단순히 왼쪽 뇌가 만들어낸 거짓말일 뿐이다. 로저 스페리는 이런 사실을 규명해 81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김대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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