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0'의 습격···인국공 자회사 정규직 47명 해고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0.10.03 06:00

94.2%.

[중규직의 눈물①]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추진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해 스스로 매긴 달성률이다.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853곳이 정규직화 대상 노동자 19만 6711명 가운데 18만 5267명(94.2%)의 정규직 전환을 완료했다.

숫자만 봐선 100% 달성이 눈앞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속출했다. 정규직 전환을 속도전으로 추진한 만큼 공공기관 곳곳에서 전환 방식과 처우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고용 안정성은 높아졌지만, 연봉이나 근로 조건은 여전히 비정규직에 가까운 일명 ‘중규직’이 늘어나면서다.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하지만, 일반정규직과 임금·승진 체계를 달리하는 무기계약직이 대표적인 중규직으로 분류된다. 본사가 아닌 자회사 소속 정규직도 중규직에 포함된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부당해고 규탄 집회가 열린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삭발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인천공항 비정규직 부당해고 규탄 집회가 열린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삭발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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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비정규직→중규직 전환 과정에서 오히려 일부 정규직이 일자리를 잃는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취임 후 처음  외부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선언한 인천공항에서다. 이미 자회사 정규직 신분을 인정받았지만, 본사 직접 고용방침에 따라 치러야 하는 전환 채용 시험에서 탈락자가 나왔다.

앞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 6월 23일 공항소방대(211명), 야생동물통제요원(30명), 보안검색요원(1902명) 등 3개 분야 비정규직 2143명을 직고용(무기계약직) 형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갈등은 공사 측이 우선 공항소방대와 야생동물통제요원 등 방재직을 대상으로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경쟁 채용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직고용 채용에 응시한 인원 236명 가운데 47명이 탈락해 실직 위기에 놓였다.

공사가 결국 해고를 통보하자 이들은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삭발식을 갖고 “공사 측의 원칙 없는 직고용 절차를 거부하고,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자회사 정규직으로 남겠다”고 주장했다. 정규직 전환 시험을 통과한 나머지 직원은 본사 무기계약직으로 근무 중이다. 정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중규직끼리 경쟁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공공부문에서 정규직 전환을 완료한 비정규직 가운데 15만 6062명(84.2%)은 자격 심사를 통한 전환 채용, 2만 9205명(15.8%)은 경쟁 채용을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혜 시비를 없애기 위해 공개경쟁을 하라는 요구가 높아 경쟁 채용 비율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중규직 10인 인터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규직 10인 인터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진통을 겪어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임금·처우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일명 '인국공 사태'를 지켜본 중규직 노동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시교육청에서 시설유지 업무를 하는 50대 한 직원은 “교육청이 연봉 삭감을 받아들이고 무기계약직이 되든지 아니면 계속 계약직으로 일하든지 하라고 했다”며 “60세까지 일할 수 있게 됐지만, 연봉이 낮아져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나 생각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 자회사 소속 특수경비직 근무 7년 차인 한 30대 직원은“정부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가이드라인만 내려보내고, 노동자들의 급여, 복지, 삶의 질 향상 여부는 전혀 모니터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공항에선 당장 방재직에 이어 정규직 전환 시험을 앞둔 1902명의 보안검색 요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2018년 1월 개장한 제2여객터미널에서 근무하는 800여 명의 불안감이 크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자여서 자격 심사가 아니라 100% 경쟁 채용을 통과해야만 고용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공민천 보안검색서비스 노조 위원장은 “지난 3월 공사와 직고용 대신 자회사 정규직화에 합의했다”며 “갑자기 방침을 바꾸고 경쟁 채용에서 떨어지면 집에 가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은 정치적 입김에 취약하다 보니 경쟁적으로 정규직 전환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내부 진단 없이 일률적으로 정부 방침만 좇는다면 다음 정권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위문희ㆍ김민중ㆍ편광현ㆍ이가람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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