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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시각각

기준을 못 맞추니 기준을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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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언덕에서 트럭을 굴려 촬영한 장면을 주행 영상인 듯 활용해 사기 논란에 휩싸인 미국의 전기수소트럭 스타트업 니콜라. 지난 6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뒤 ‘제2의 테슬라’란 기대 속에 승승장구했다. ‘서학개미’ 등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만 지난 25일 기준 8080만 달러(약 949억원)에 이른다.

서울대 지역균형전형 탈락 속출에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 주장도 #‘깜깜이 전형’에 공정성 훼손 논란

자본 조달을 위해 주식시장에서 증권을 발행해 거래되게 하는 상장은 까다로운 요건과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니콜라는 그 절차를 건너뛰고 상장사와의 합병을 통해 나스닥에 입성했다. 우회상장(back door listing)이다. 상장 요건에 미달해도 잠재력 있는 기업의 증시 진입 기회를 열어주자는 취지지만, 우회상장은 때론 부실기업의 증시 입성을 위한 손쉬운 ‘뒷문’이 돼 투자자 손실과 시장 혼란이란 부작용도 낳는다.

뜬금없이 우회상장이 떠오른 건 최근 제기된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의 최저학력기준 폐지 주장 때문이다.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해당 전형 지원자의 절반가량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강 의원이  서울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6~2020학년도 5년 동안 지원자(1만2162명) 중 44%(5357명)가 수능 최저학력기준에 미달했다.

이 기간 지역균형전형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4개 영역(국어·수학·영어·탐구) 중 3개 영역 이상 2등급 이내였다. 2021학년도의 최저학력기준은 4개 영역 중 3개 영역 이상 3등급 이내로 완화됐다. 이미 일반전형 등 다른 전형과의 형평성 논란이 나올 만큼 낮아졌다. 그럼에도 ‘기준을 못 맞추니 없애자’는 건 전국에서 고르게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대의를 앞세워도 너무 나갔다.

지역균형전형은 학교장 추천을 받은 고3만 지원할 수 있다. 학교별 추천 인원은 2명 이내다. 전국 고교 문·이과 1~2등이 몰려 경쟁한다. 내신상으로는 동점자 속출이다. 한 입시 전문가는 “최저학력기준이 사라지면 지원자를 가려낼 지표가 없어져 결국 ‘깜깜이 전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공정 시비와 혼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내신으로는 ‘도토리 키재기’인 지원자들 사이에서 합격자를 골라내야 하는 현실적 필요로 사실상의 ‘고교등급제’가 고개를 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각 고교 지원자의 내신 등급에 따른 수능 점수를 유추해 선발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태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개별 고교 내신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남는다.

한 입시 관계자는 “지역균형전형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과도한 수준이 아니다. 서울대 다른 전형뿐 아니라 서울의 중위권대 합격도 쉽지 않을 수 있다”며 “그 기준마저 사라지면 그야말로 ‘무임승차’가 가능해지고 오히려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공의대 추천 선발 논란처럼 최저학력기준 폐지 주장의 이면에도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강 의원은 “대학은 완성된 학생에게 명찰을 달아주는 곳이 아니라 잠재력을 갖춘 학생의 능력을 완성하는 곳”이라고 했다. 우회상장처럼 잠재력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에 있는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건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문을 열 수는 없다. 모두가 원하는 대학의 자리는 한정돼서다.

냉정하게도 입시는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다. 납득할 만한 공정한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최저학력기준은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수학(修學)’에 필요한 학력 수준을 갖췄는지 판단하려는 것이다. 이 문턱도 높으니 결승점까지 앞당겨 달라는 건 자칫 ‘뒷문 입학’으로까지 비칠 길을 열자는 것으로도 들린다. 결승선을 향해 제대로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는 이들 옆에서, 룰을 바꾸며 프리패스를 쥐여주려는 게 균형 선발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입시에는 성적순도 필요하다.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